현실감 없는 낯선 세계를 찾아 떠나는 건 모험이다. 현실 세계에 없을 것만 같은 괴상하고 오묘한 것들, 그것들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그렇게 색다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익숙한 현실을 벗어나려 한다.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만나기 위해선 발칙한 상상과 순수한 열정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그것만 있으면 돈키호테나 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모험을 향한 의지만이 뚜렷했던 돈키호테, 그는 상상을 통해 무수한 허상들을 만들어냈다. 허상에 대한 주장과 논리는 비약적이고 몰상식해서, 그것을 반박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실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갈 기망하기 위해 꾸며진 일들은 늘 남을 골탕 먹이거나 한몫을 차지하려는 데 사용되었다.
끓는 냄비를 들추기 힘든 것처럼, 달아오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내가 뜨겁게 당하고서야 거짓인 줄 깨닫게 된다. 열렬히 외쳤던 구호가 사실은 다른 걸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속임수였다는 걸, 돈키호테는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했고 정의로운 사도처럼 굴었다. 나중에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났는데도 사과는 없었다.
돈키호테는 세상에 악이 만연하다고 항상 말했다. 설령 자신이 미치광이처럼 보일지라도 악에겐 무작정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태연히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며 무엇이라도 정복할 것만 같았다. 또한 그의 모험은 순수하고 비장해 보였기에 의심치 않았다. 열정적이고 모험심 강한그를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다.
평범하고 가난했던 산초는 돈키호테가 악을 물리친 후 고향에 돌아와 자신을 영주로 임명시켜 주리라믿었다. 현실에서 고통과 좌절을 맛보았지만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란 소망을 품었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무자비한 창 끝이 또다시 어디로 향할지, 고단한 모험을 언제쯤 끝낼지 알 수 없었다.
해외마케팅장K는 조만간 브라질 법인장으로 임명될 예정이었다.K는 자기 아이를 현지 국제학교에 보낼 생각으로 차근히 포루투칼어를 준비했다. 그런데 브라질 식품의약안전청에 신청한제품등록이 지연되면서 인사발령이늦춰졌다. 대표이사는 K에게제품등록이 바로 된다는가정하에 매출목표를 설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향후5년 치중기계획과 실적관리방안을함께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K는 점검회의, 전략회의, 분석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보고서를제출했지만 대표이사는 마뜩잖았다.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요? 이런 보고서는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지금 중요한 게 모라고 생각합니까?"
"식약청에 신청한 제품등록을 하루빨리 마치고 매출을 올리는 겁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겁니까? 빨리 가서 로비를 하든 모라도 해야죠!"
K는 난감하고 당혹스러웠다. 브라질 시장에 정통한 개발팀도 이미 손을 뗀 상태에서제품등록 절차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허가도 없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을는지 스스로 물었다. K에게 대표이사는 돈키호테처럼 보였다. 돈키호테는 상상만으로도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하지만 상상만으로할 수 있었다면 희망고문이란 말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을 괴롭히는 자는 늘 자신이 사소한 장난질을 쳤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것은 괴롭힘을 당한 자와 하등의 상관없는 돈키호테식 논리일 뿐이다. 돈키호테는 진정 누군가의 희망이나 절망에 공감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껏 누구랑 제대로 싸워본 적 없었던 K는 산초처럼 그때 돈키호테 곁을 떠났어야 했다. 결국 K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자 자동차 본넷 위로 떨어졌다.
돈키호테와 미친 듯이 여행했던 산초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산초는 깨달았다.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기 위해 주위 사물들을 악마로 만들었고,우연히 엉뚱한 결과를 얻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의 명분은 그럴싸하지만종국에는자신도 없앨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한참지난 후 산초는 돈키호테와의 여행을떠올렸다. 이전에 맛본 광기 같은 게 내면에 불꽃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돈키호테라는 악마가 가장 미친 짓을 하고 있을 때 겨우 빠져나온 것을 기억해야지." 카프카는 돈키호테의 출현을 경고했다.K에게 빨리 돈키호테로부터 멀어지라고 미리 경고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K의 돈키호테는 이 세상 어디에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