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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Aug 17. 2024

잉어가 가라앉다

변신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상처가 있지만 아픔을 참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아픔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있던 상처가 사라진 게 아니다. 나를 찾아오는 대개 사람들은 아직 덜 아문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면 내게 찾아올 리 없다. 그들의 일상이 기쁨으로 채워졌다면 그토록 슬픈 눈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상처는 조금씩 다른 크기를 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점철된 상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자 안에 보이지 않는 물건을 더듬어 무엇인지 맞추려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애석한 마음을 충분히 뱉을 때까지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그런 게 곤란할 때도 있다. 하지만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내가 곤혹스러움을 견디면서 있는 최선의 일이다.   


지금도 온몸 여기저기에 상처투성인 사람들이 고온다습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맥없이 지쳐있다. 마치 호주머니 속에  캐러멜처럼 납작하게 눌렸거나, 맛보기도 전 손가락 새로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 같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눅진한 장판에 발바닥이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슬픔이 방치된 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슬픔을 보낸 뒤에도 지독한 고요가 찾아온다.     


고요한 물결처럼 생긴 조그마한 수십 개의 다리 거실벽 한쪽에 붙어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작은 물결에 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이에 놀란 는 황급히 어두운 석을 찾아 헤맨다. 그리마(돈벌레)는 털같이 생긴 다리를 가졌다는 외형적 특성 외에 사람을 해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퀴벌레나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는 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마에게 호의적이진 않다. 잔뜩 겁을 먹고 움츠린 그리마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에프킬라를 뿌려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마와 같은 벌레에 대한 혐오나 공포는 뚜렷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레가 숨어 살기에 눈에 잘 띄지 않아 낯설었다거나, 신체 구멍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거나, 유전적 요인이나 신경학적 반응 때문이라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사례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벌레는 혐오나 공포를 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작은 다리들을 본능에 따라 살기 위해서 움직였을 뿐이다.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보통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 기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딱딱한 등껍질에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벌레로 변해있었다. 영업으로 인한 긴장과 잦은 출장 때문에 꿈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 여겼다. 침대 이불을 떨치고 일어나려 해도 도무지 일어설 수 없었다. 목소리까지 변해버린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 없었다. '직업병 전조일 거야.'  잠자는 속으로 말했다.   


지배인은 한 번도 지각이나 조퇴를 해본 적 없는 잠자에게 직업윤리와 직무태만을 거론했다. 영업사원이란 지위 확고한 게 아니라며 세상엔 건강해도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들이 우굴우굴하다고. 잠자는 아프지만 결코 아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 벌레로 변한 후 그에게 생계를 의지했던 아버지는 사환,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 여동생은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가족은 조금씩 지쳐갔으며 그를 무시하거나 학대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의 아버지가 그를 향해 사과를 집어던졌을 때, 등에 꽂힌 붉은 사과는 모든 신경과 감각을 소실시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잠자는 조금씩 납작하게 말라갔다. '나는 없어져야 할 것 같아.' 잠자는 지막을 생각다.  


100여 년 전 카프카는 실생활에 쓸모가 없어진 인간 유형을 '벌레' 묘사했다. 쓰다가 남은 잉여처럼 벌레가 된 영업사원 잠자는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배척당했다. 카프카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도 환경을 지배하고 적응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능력만 진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지식과 능력이 없는 인간들을 게으르며 나태한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들에겐  '급식충', '맘충', '틀딱충', '100충'이라는 벌레(蟲) 이름이 다.


K는 어릴 적부터 방송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는 신문사 기자로 경력을 쌓 후 모 방송국에 경력기자로 입사다. 경제부 방송기자로 할 기회를 얻 K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기자경력이 전부였던 그에게 생방송 PD업무가 갑자기 맡겨졌다. 선임에게 고작 2주 교육을 받으면서 메인 연출 몇 차례 해보았을 뿐이었다. 이후 K차례 방송사고 면서 심리적 부담이 커져만 갔다.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인력증원을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장은 방송 도중에도 K에게 고성을 지르며 면박고, 출연자 섭외 문제 등으로 질책다. 방송 소품과 스텝 관리까지 도맡게  K는 업무에 집중 수 없었다. 인사고과는 연속 최하위 평점을 받아 면직될 수 있다는 불안. K는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면서도  피하고 잠이 부족 느낌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수록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인사고과 평정일이 다가왔다.  


"정말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팀장에게 무엇 하나라도 포기해 달라고 할까요? 그건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인데, 전진도 후진도 못하겠어요. 그냥 사라지고 싶어요. 초부터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K는 출구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변신을 시도했다. 역량이 부족 자신을 벌레처럼 혐오했고, 모든 게 전부 자기 잘못인 것처럼 간주했다. 그래서 자신을 새로운 종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K의 꿈은 연못 속 잉어처럼 유유히 헤엄치는 것이었만, 결국 잉여가 되어 물속에 가라앉아 사라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잉여가 되어버린 K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받았을 아픔에 대해 직접 들은 적 없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K가 남기고 간 일기와 메모를 통해 그가 얼마나 아팠을지 가늠 뿐이다.




* 카프카 <변신> 참조

* 사진출처: COPILOT DESIGNER

* 잉어는 전통적으로 부귀, 성공, 출세, 번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 실용주의(Pragmatism)의 윤리적 문제점은 윤리적 상대주의의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나 환경에 따라 유용성이나 실용성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사회의 가치나 도덕적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다. 이러한 윤리적 상대주의를 극단적으로 가져가게 되면, 히틀러에게도 유태인 학살을 자행할 만한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를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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