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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May 11. 2024

자유로운 구속

학술원에의 보고


칼바람 위로 연은 잠시 뒤뚱거리 공중으로 솟구쳤. 중력을 거슬러 시작된 비행 점점 멀어지는 현실감실낱 끝 매달렸다. 마줄 하나에 몸을 위탁해 신을 다하는 외줄타기처럼 아찔다. 그렇다고 줄을 놓으면 연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그렇게 자유는 언제나 위태로운 것 같다.


자유 구속된 상태를 벗어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자유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자유를 위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함부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해서도 안된다. 사회학자 존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자유는 일방적이거나 제멋대로인 것이 아니라, 상호 간 존중을 토대로 세워지는 것이라 했다.  


원숭이 피터가 말했다. "자유로써 사람들은 너무 자주 기망당합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인 것처럼 여지요.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그런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일 뿐이." 그의 말대로 인간은 자유 억압적인 것로부터 해방시켜 줄 진리의 파생품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가전제품 AS기사 K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가전제품 AS기사였던 K는 평소와 다름없이, 잠을 자다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119 구조대에 의해 응급 후송되었으나, 급성 심장사로 추정되었다. K의 아들은 그가 죽기 전날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저는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랑은 평소에도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제게 '너 요즘 일은 힘들지 않니?'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당연히 힘들죠.'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남의 돈 받으면서 하는 일이 쉬운 게 없으니, 누구 밑에서 일할 생각 말고 얼른 배워서 네가 사장이 돼라.'고 하셨어요."  


K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소주를 연거푸 구멍에 넘기면서 지친 기색이었다고 했다. K를 힘들게 만든 건 30년간 몸 담았던 업체의 서비스 부문이 통폐합되어, AS기사들에 대한 해고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해당업체는 사업 개편을 위한 법인 합병이라는 정당성을 이미 확보했고, 영업 이익과 실적 개선이라는 명분을 쌓아 인력구조 조정을 행하였다.




수많은 AS기사들이 서울 본사 앞에 모여 노숙하면서 농성과 집회를 벌였고,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K는 난생처음 쟁위행위라는 걸 하였고, TV나 신문에서 보았던 시위대와 구호를 외치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걸 실감했다. K 자신에게 불쑥 찾아온 일믿기지 않았다. 능력 자질에 특별한 하자가 없어도 일방적인 해고를 가능케 하는 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당업체는 불안해진 AS기사들에게 당근책을 제했다. 지역 가맹점주 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는 것인데, 회사의 경영 문제와 AS기사의 생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처럼 보였다. 불가피하다 생각한 K는 제시안을 수용했고, 업체가 소개해 준 가맹점주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곧이어 예상치 못한 일이 또 벌어졌다. 전국의 가맹점주들이 일제히 AS기사들에게 대한 일종의 자유 선 한 것다.


"AS기사 프리랜서가 됨으로써 완전히 독립하는 거예요.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일한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거죠. 3.3% 사업소득세율을 적용하면, 근로자로 있을 때보다 원천징수 비율이 훨씬 낮아지거든요. 이득인 셈이죠. 그래서 사업자로 전환하겠다는 AS기사들이 정말 많았어요."


본사 담당자가 내게 한 설명은 가맹점주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AS기사의 직접 고용주는 가맹점주이기에, 본사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개인사업자 전환 이슈는 가맹점주와 AS기사 간에 자율적으로 해결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사냥꾼붙잡힌 원숭이 피터는 스스로 원숭이다움을 포기했다. 사방이 가로막힌 좁은 우리를 벗어나는 방법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피터는 인간의 동작이나 습관을 철저히 관찰하고 모색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는 대로 악수하기를 따라 했고, 멀리 침 뱉기나 파이프담배 물기, 독한 술 마시기 등을 흉내 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말까지 구사하게 되었다. 그런 행위는 원숭이의 습성과 무관하지만, 사람들에게 피터의 노동가치와 생산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피터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게 아닐지, 우리벗어나 정말 인간처럼 자유인이 되려는 게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피터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본래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일상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박탈당한 상태에서, 만약 사람들이 자유라는 핑계로 그를 세상에 방치한다면, 결코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칙칙하고 비좁은 우리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출구로든 이어진 작은 구멍을 찾겠다는 심정이었다.




프리랜서가 된 K는 더 이상 노동자 신분이 아니었다. 제한된 근로시간이나 정해진 휴게시간 등 근로조건은 보장되지 않았다. 여타의 노동자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수록 늘어난 AS 물량을 처리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했고, 부족한 시간 때문에 식사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비수기 때 실적이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물량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바짝 일을 조여야 했다. 그리고 제 시간 내 AS 건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할당량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K는 얼마 되지 않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심장에서의 심비대 소견 이외의 사인으로 고려할 만한 사망원인은 발견되지 않다고 했다. K의 돌연사는 사인미상으로 다.


무엇이 그의 죽음을 초래했을지 확정할 순 없어도, 나는 무엇으로 인해 그가 절망과 불안 속에 살았는지 알 수 있다. K가 바랬던 건 허울만 좋은 기망된 자유가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생존의 실마리가 되어 줄 자유로운 구속이었다. 나는 그것을 꼬깃꼬깃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가 아니라, 외줄에 의지에 자유롭게 비행하는 연이라 생각한다.




* 카프카 <학술원에의 보고> 일부 글 인용

* 사진출처: COPILOT DESIGNER

* 참고: 2020. 7. 1.부터 가전제품 배송설치 기사에 대하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지위를 인정하여 산재보험이 적용되었고,  2023. 7. 1.부터 전속성 유무와 상관없이 노무제공자로 보아 산재보험이 전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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