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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Jun 07. 2024

겉보기에 그럴 뿐

나무들


"우리는 눈 속의 나무등걸과도 같아서 조금만 밀치면 밀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밀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땅바닥과 결합되어 있는지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봐라, 그것조차도 다만 겉보기에 그럴 뿐이다."


나무뿌리가 썩었는지 모르면서 등걸이 견고하다 생각다. 직접 나무를 밀치고 땅 속 깊숙이 파 보아야 알 수 있데도 겉 판단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없는 게 아닌데도, 보이는 대로 믿는 건 쉽고 수월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직선이라도 가까이구부러진 도로 것처럼, 가까이 관찰하고 생각해야 진실한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건을 리하는 게  주된 업무였. 한 해 백 건이 넘니, 3일에 한 번꼴 새로운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사건은 대체로 자, 추락, 교통사고 등 우발적인 경우고, 그 외에 뇌내출혈, 심장마비 등 질이 발현된 사건이었다. 간혹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사인미상으로 분류되어 특별한 절차 진행되었다.


49일간 망자 넋을 기리고 슬픔을 덜어낸 뒤 사건이 접수되면, 음에 얽힌 사실 정리하고 법률관계를 분석해 유족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고성 사건 최보고까지 보통 3주 소요되었고, 어려운 사안일 경우 6개월 이상 걸렸다. 질병성 사건 더 시간이 걸렸고, 역학조사  마감 기일을 가늠할 수 없었다


사정없는 인생은 없겠지만, 자살의 경우 죽음의  동기가 될 만한 것들을 샅샅이 훑었다. 휴대폰, 노트북, 업무일지, 통신기록 등 일상의 흔적을 수집했고, 경찰서, 소방서 등 유관기관의 자료를 참고했다. 그럼에도 소명할 수 없으면 가족부터 가까운 친구, 직장 동료까지 조금씩 범위를 확대해 조사했다.


자료수집이나 조사는 , 물리적 제약 때문에 혼자 해낼 수 있는 일 아니다. 그누구 입증책임이냐는 문제를 떠나, 유족의 노력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처럼 목격자 진술과 정황이 절실할 경우,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유족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면 변호사, 노무사에게 사건을 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망자의 죽음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히 삶이 비어진 상태로 보였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먹다 남 게 들어있는 통조림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만, 살아있는 자는  할 말이 있었다. 그리고 간혹 쉽게 이해지 않는 꺼냈다. 망자가 무연고자로 빈소 없이 장례를 치렀는데도 장례비를 요구하거나, 이혼 후 종종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보상받을 권리를 주장하거나, 기초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혼인 신고를 미루었으니 혼인관계를 인정하라는 등 별별 얘기다.   


또한, 주변인들은 망자나 유족에 대해 예상치 못한 소문이나 평판을 봇물처럼 쏟아내곤 했다. 그것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고 싶 욕망 때문일지 모른다. 도박, 패륜, 별거, 폭행 등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  자극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일들로 인해 윤리적 보상이란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 스러웠다.


앞에 악어의 억지 눈물을 흘리고, 뒤에서 웃음을 참지 못어떤 사람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앤 하이드 씨> 떠올렸다. 지킬 박사는 언제나 자상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지만, 내면에는 냉혹하고 잔인한 하이드가 있었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하이드는 통제되지 않는 괴물이었다. 그런 현실판 괴물종종 눈앞에 출현했다. 물론 그들의 형편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다. 다만, 나는 그들이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일순간 일어다. 삶과 죽음이 신의 영역이라 해도 죽음 문턱을 스스로 뛰어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죽기보다 사는 게 두렵고 아팠던 것이다. 만약 생(生)과 사(死)가 동시 공존할 수 없다면, 어떤 식의 죽음을 맞을 것인지 고민했을 것다.  


내 삶의 터전이 견고하고 부동한 것처럼 보여도 그뿐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그럴싸지만 지지할 데 없는, 뿌리째 흔들리는지 누가 알겠는가. 모든 근간이 송두리 째 뽑히고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을 허투루 보냈다며 후회하지 않 바랄 뿐이다.





* 인용 문구는 카프카의 <나무들>에서 발췌

* 그림 출처: COPILOT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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