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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26. 2024

투자 상식을 비틀어 보자

[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 켄 피셔

당신이 상식이라 믿었던 것을 의심하라


1. 채권이 주식보다 안전하다.
2. 지나친 정부부채는 위험하다.
3. 변동성은 그 자체가 위험(Risk)이다.
4. 투자에 있어 손절매는 필수다.
5. 특정섹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게 좋다.
(전기차, 반도체, 소형주, 성장주, 가치주 등)
6. 현금흐름을 만드는 배당주가 최고다.
7. 실업률이 높으면 주가가 떨어진다.


위 내용은 내가 켄 피셔의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투자상식들이다. 나는 5번(특정섹터를 집중하는 게 유리) 정도를 빼면 별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친 정부부채를 경계하고, 주식보다 안전한 채권 비율을 늘려 자산분배의 안정성을 높이고, 단기적인 손실에 그치도록 손절매를 습관화하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상식이 아니던가? 아니 상식보다는 건전한 투자 원칙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들이 잘못된 믿음에 불과했다니, 켄 피셔 이 양반이 또 책 팔아먹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사실 켄피셔는 우리가 쉽게 낮춰볼 그런 양반은 아니다. 일단 워런버핏이 스승이라 생각하는 필립 피셔의 아들이 켄 피셔이다. 아버지 밑에서 실무를 배웠으니 투자 거장의 곁에서 최고의 노하우를 습득했을 것이다. 그럼 유명한 사람의 아들 정도로 켄피셔를 깔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켄피셔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커리어를 살았고, 살고 있는 현재 월스트리트의 존경받는 구루 중 한 명이다. 100조 이상의 투자운용사의 회장이고, 전 세계 500등 안에 드는 부자이며, 30년간 총 11권의 잘 나가는 책을 쓴 능력자이다. 무시할 수 없는 양반임에 분명하다.


가치투자의 거장 필립피셔와 그의 아들 켄피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은 좀 너무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독자가 제목과 목차만 봤을 때 이유 없는 반감이 생길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당연한 내용들을 억지로 비판하려 책을 쓴 게 분명하다고 의심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진실인지 의심하라. 직관과 반대로 생각하라. 과거 사실, 상관관계를 확인.] 켄 피셔는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심‘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역시 켄 피셔는 켄 피셔구나라고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책은 대충 구조가 비슷하다. 기자가 탐사보도를 하듯이 글을 쓴다. '문제제기, 기존주장 및 근거, 기존 주장에 대한 반론, 대안제시'의 구조로 글을 쓰니 그 논리적 정합성에 설득 돼버리기 일쑤다. 이번 책도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채권의 안정성에 대해 반박한 논리를 살펴보자.


문제제기: 과연 채권이 주식보다 안전한 자산일까?


기존주장 및 근거: 채권은 주식보다 변동성이 적다. 그러므로 채권이 주식보다 안전하다. 5년 기준으로 주식과 채권의 변동성을 살펴보면, 주식은 8.8%의 표준편차를 보이고, 채권은 4.0%의 표준편차를 보인다.


기존주장에 대한 반론: 아니다. 채권의 변동성이 주식보다 큰 경우도 있다. 30년 기준으로 투자기간을 늘려보면 채권의 표준편차 2.8%인데 주식의 표준편차는 1.4%에 불과하다.


대안제시: 채권이 단기적 관점(5년 단위)으로 보면 변동성이 낮아서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채권보다 주식의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거기다 주식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기간보다 플러스인 기간이 70% 이상이다. 따라서 채권만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은 어떻게 자산을 배분할지에 달려있다.


할 말이 별로 없게 만드는 논리적 글쓰기가 아니던가! 내가 딱딱하게 정리해서 그렇지 켄 피셔는 이렇게 쓰지 않았다. 글을 맛깔나게 잘 써서 읽을 때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책이 잘 팔리나 보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니 말이다.


이 책의 핵심주장은 상식이라 생각되는 것도 데이터와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의심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끊임없이 의심만 하다가는 회의주의자의 덫에 걸려서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엄밀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편의점에서 과자 고르듯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과자의 가격이나 영양성분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이다.


투자는 패션이 아니다. 취향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우리의 피 같은 돈이 광기 어린 투자판에서 갈려 나갈 때, 우리는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바로 기회비용이라는 책임 말이다. 오늘 하한가를 맞은 내 주식은 훗날 내 중고차가 퍼졌을 때 새 차로 바꿀 수 있었던 돈이다. 오늘 상장폐지된 코인은 내일 아들딸내미들 세발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던 돈이다. 투자를 패션으로 했다면 망신만 당한다.


투자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용기와 지혜' 말이다. 켄 피셔의 이 책은 용기보다는 지혜에 초첨을 두고 말하는 책이다. 투자는 치기 어린 만용이 아니라 많은 정보와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니 말이다. 만용은 그릇된 것이다. 하지만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켄 피셔도 이 부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다. 책의 한 꼭지에서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큰 기회비용의 손실을 야기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교훈을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의심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많은 데이터와 사례를 찾아본다. 그렇게 많은 인풋이 있었다면, 용기를 낼 순간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과감하게 투자하라. 단, 내가 하는 행동이 만용일지 모르니 대비책은 필수적으로 준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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