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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y 30. 2024

드럼통 하이네켄보다 카스가 더 맛있는 이유

[마케팅 차별화 법칙], 신상훈, 강혁진, 김대선, 서정우

차별화의 핵심요소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이마트에서 요상한 물건을 목격했습니다. 5L 원통에 담긴 맥주였는데 ‘생맥주 감성 그대로!’를 외치는 것 같은 외향에 마음을 뺏겨 홀린 듯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뭐 그런 희한한 물건을 사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저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시원한 생맥주를 집에서 먹을 수 있다면 아내도 좋아할 것 같았죠.


문제는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습니다. 오래간만에 가족들끼리 외식으로 양꼬치를 먹은 날이었습니다. 양꼬치에는 맥주가 빠질 수 없으니 시원한 카스를 네 병 정도 곁들였죠.


은은하게 양꼬치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와중에 시원하게 한잔 걸치는 카스의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카스의 톡! 쏘는 그 맛에 저와 아내는 연신 건배를 해버렸죠.


문제의 드럼통 하이네켄과 어디서 얻은 카스 유리잔

집으로 돌아온 저희 부부는 2차 안주를 저번에 사놓은 참외로 정했습니다. 1차에서 양꼬치에 카스를 먹었으니 2차로도 그냥 맥주가 낫겠다는 마음에 기다렸던 맥주통을 개봉하기로 했습니다.


5L의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등장한 맥주통, 부푼 가슴으로 어디서 얻어온 카스 유리병에 따릅니다. 제법 거품이 많이

나오지만 상관없습니다. 맛만 좋다면요.


기분 좋게 2차 개시의 한잔을 들었습니다.


“짠!”


시원하게 첫 잔을 들이켜는데 좀 뭔가 이상합니다. 톡 쏘기는 하는데 맥줏집 생맥주와는 다른 맛에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호프집에서 500ml 한잔을 시켰는데, 갑자기 세계맥주집에서 처음 보는 외국 맥주의 맛이 난다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꼭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음… 오빠, 아까 먹은 카스가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아내의 반응도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무안한 마음에 나라도 하이네켄 맥주통을 변호해야 하는 건 아닌지 잠깐 망설였지만 그냥 솔직하기로 했습니다.


“응… 그렇네. 이건 오빠가 다 먹을게. 미안 ㅠㅠ”




카스 맛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요? 요즘 저는 다양한 맛의 맥주들이 출시되어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모델이면 의리로라도 한번 먹어보는 게 도의라 생각하는 저인데, 에스파의 카리나가 광고를 해도 새로 나온 크러쉬 맥주에는 손이 안 갑니다.


젊었을 때는 호기롭게 술집에서 흑맥주도 시켜보고 버드와이져가 짱이네, 요즘엔 삿포로가 최고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카스만 찾아대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카스는 저에게 있어 차별화된 매력이 있는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저는 이렇게 새로운 맥주에 도전하지 못하는 걸까요?


마케팅에서의 차별화의 요소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 요소들이 작동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오늘 읽은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은 저의 질문에 상세하고 친절하게 답하는 책이었습니다.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에서는 차별화 핵심요소를 5가지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차별화 핵심요소 5가지]

1. 경제성

다른 상품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고객이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가성비가 뛰어나 고객의 선택을 받는 상품이나 브랜드

Ex) 다이소 상품들, 유니클로


2. 기호성

장기간 사랑을 받아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상품이나 브랜드

Ex) 새우깡, 신라면, 메로나, 카스


3. 편의성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여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도록 만든 상품이나 브랜드

Ex) 스타일러, 무선청소기, 건조기


4. 신뢰성

소비자들의 불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장기적으로 고객들의 믿음을 받아온 상품이나 브랜드

Ex) 유한양행, 풀무원


5. 기능성

기존의 상품보다 ‘향상된’ 기능으로 고객을 편의성을 증대시키거나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상품이나 브랜드

Ex) 하이브리드 자동차, 스마트폰


카스는 저에게 있어 새우깡이자 메로나이면서 신라면이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맥주=카스’라는 기호가 생겨버린 저는 쉽게 다른 맥주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제 맥주 여정은 마치 집을 나간 탕아가 이것저것 경험하고 고난과 고초를 겪다 결국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카스를 떠나 호가든도 마셔보고 버드와이져도 마셔보고 삿포로도 마시다 결국 카스로 되돌아와 버린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기호는 한번 형성되면 쉽게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에서의 차별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기호성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죠.


사실 나머지 4가지 차별화 요소도 한번 형성되면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경제성은 저렴하면서도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것에는 수많은 노하우와 암묵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쉽게 경쟁상대가 따라 하기 어렵죠.


편의성과 기능성은 기술개발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모험이 필요하지만 사람이 한번 편한 것을 경험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속성 때문에 회사가 특허 등의 보호장치를 잘 마련한다면 그 이점을 오래 누릴 수 있습니다.


신뢰성이야 그야말로 장기적인 소비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니 회사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소비자가 쉽게 등을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이처럼 차별화란 상품이나 브랜드의 장수비결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상품이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차별화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마케팅을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제가 먹은 하이네켄의 맥주통은 기발한 마케팅 전술이었습니다. 집에서도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니, 구미가 안당길 수가 없죠. 하이네켄은 제가 먹어본 맥주들 중에서는 맛으로는 상위 10%에 해당되는 맛있는 맥주입니다. 좋은 맛의 맥주가 기발한 마케팅을 했으니 제가 홀린 듯 사버린 것이죠.


다만 하이네켄은 불행하게도 대진운이 안 좋았습니다. 하필 양꼬치에 카스를 먹은 날 그 맥주통을 처음 열었거든요.

기분 좋은 소개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그녀를 봐버린 기분이라면 비유가 적절할지 의문이네요.(여보 오해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어찌 되었든 조강지처가 최고고 죽마고우가 최곱니다. 마케팅에서의 차별화는 짝 없는 상품에게 조강지처와 죽마고우를 맺어주는 일과 같습니다. 오래오래 기억되고 사랑받는 상품이나 브랜드의 비결은 차별화에 있습니다. 차별화의 핵심요소를 잘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마케팅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제게 카스의 차별화를 넘어서는 맥주가 나타날까요? 나타나도 좋고 안 나타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길들여져 버린 ‘맥주=카스’라는 기호성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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