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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여행

by 작은영웅 Feb 22. 2025

암스테르담 시내 유명 식당에서 쓰리코스 정식을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우리에게 막내 동생이 말했다.

내가 잠 깨는 얘기 해줄까?”

“응, 뭔데?”

“나 임신했어. 벌써 7개월이야.”

뭐? 말도 안 돼.”

그제야 우리는 막냇동생의 몸을 유심히 바라봤다. 공항에 검정 포대자루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났을 때 워낙 특이한 패션을 즐기는 아이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몸매가 좀 이상해서 "배에만 살이 다."면서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도 임신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막내는 네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구정 설에, 친정 엄마 집에 모여있던 우리 세 자매육아에 찌든 막냇동생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의기투합했다. 막내도 우리 유혹에 넘어가 남편과 시댁에 네 아이를 맡기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6개월 후 8월에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 이후로 여행 준비는 카톡으로만 이루어졌고, 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막내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이제껏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여행 추진에 한껏 들뜬 언니들이 분노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 다섯째 아이라서 7개월쯤에는 몸이 무겁긴 해도 여행에 큰 무리는 없을 거니 태교여행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떠나는 날이 다가올 즈음 몸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산이어서 그런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운 증세가 나타났는데 약을 쓸 수도 없어서 보습제만 바르며 버텨왔다고 했다. 정말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온몸의 피부가 얼룩덜룩 일어나 있었다.


공항에서 고백하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까 봐 꾹 참고 암스테르담까지 왔는데 눈치를 못 채는 언니들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고, 전차를 타자고 해도 무조건 걸으라고 하는 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첫날밤에 고백을 한 것이었다.


졸다가 잠이 확 깬 우리들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우리는 막내의 배를 만지며 같이 여행을 온 뱃속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강행군으로 계획된 일정은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더운 여름날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쁘띠프랑스, 파리까지  막내는 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빨간 캐리어를 끌고 열심히 쫓아다녔다.

락커 사용이나 기차 연착 등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유럽의 공무원들은 도움 요청을 대부분 무시했으나 임산부의 요청에는 즉각 응답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배 나온 동생을 앞세워 다니면서 여러 모로 덕을 보기도 했다.

첫날에는 밤새 몸을 긁어대며 잠 못 이루게 했던 두드러기 증세도 유럽 공기가 좋아서인지 점점 나아졌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우리랑 여행을 같이 했던 막내의 다섯째 아이는 예쁜 딸이었다. 위에 네 아이에 비해 다소 이국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에서 태교를 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농담을 하곤 다. 매사 씩씩하고 긍정적인 막내라서 가능했던 유럽 태교 여행은 이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만약 막내가 포기했더라면 우리의 행복한 여행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을 것이다.


요즘은 비행기표나 숙소 예약을 서둘러야 해서 여행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막상 떠날 때가 되면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갈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계획할 때의 부푼 감정은 옅어지고 현실적인 걸림돌이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그럴 때 그만 두면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시간은 없다. 사사로운 문제들을 모두 미루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능한 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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