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강아지나 고양이가 무섭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어 다니는 동물들이 무섭다. 네 발로 다니는 동물들은 모두 무섭다. 남편은 요즘과 같은 반려동물의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할 정도이다. 사실 정신과에 가면 나 같은 사람도 치료가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삶이 불편해서 가능만 하다면 치료를 받고 싶다.
이 두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할까.
어릴 때 살았던 시골집은 쥐가 많았다. 그래서 쥐를 잡을 용도로 고양이를 키웠었고 마당에서는 집을 지키는 개도 키웠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죽은 쥐를 물고 다니는 고양이를 보며 소름 끼쳤던 기억은 있다.
어릴 때 악몽을 많이 꾸었는데 주로 엄청 큰 개나 고양이한테 쫓기는 꿈이었다. 막 도망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곤 했다. 밤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나자 엄마가 보약을 먹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런 꿈은 꾸지 않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공포였다. 깨어났다 다시 잠들면 이어서 쫓기곤 했으니까.
어릴 때 기억 중 또 하나는 외할머니댁이었던 것 같다.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그곳에 가려면 마당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마당에는 으르렁거리는 개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무서웠다. 할 수 없이 긴 막대기를 들고 휘저으며 개가 내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는데 나를 만만하게 본 개가 장대를 타고 나한테 달려든 것이다. 장대를 던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 안방으로 뛰어든 내 뒤로 방까지 개가 쫓아왔다.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한 그때 다행히 외할머니가 돌아오셔서 개를 쫓아냈다.
어쨌든 동물들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세상이 변화하면서 점점 불편해졌다.
길을 걷다가 목줄 없는 강아지가 가까이 오면 비명을 지르고 산길에서 낭떠러지와 강아지가 있으면 낭떠러지를 택할 만큼 이성을 잃어버리곤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이가 어릴 때 아파트 계단에서 뛰어오는 강아지를 만나자 아이를 앞세우고 뒤로 숨은 적도 있다.
아무튼 이 병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생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가고 싶었으나 들개들이 많다고 해서 포기했고, 이집트 카이로에 여행 갔을 때는 사방에 돌아다니는 고양이 때문에 걸어 다니지도 못했다. 나의 이런 면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인도나 조지아 같은 나라에 가면 큰일 난다고 충고도 해준다. 인도에 가면 길에 동물들이 마구 돌아다닌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낸다.
산책을 하다 강아지를 만나면 몸이 잔뜩 긴장한다. 목줄이 있어도 행여 가까이 올까 멀리 돌아간다. 길만 나서면 애완견이 늘비한 세상에서 나는 불안에 떤다. 하지만 주변에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나의 고통을 공유할 사람도 없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한다는 것을, 그게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친구들이 늘어간다. 강아지 사진을 프사에 올리고 자식처럼 예뻐하는 친구들을 보면 죄책감마저 든다.
그래서 진짜로 고치고 싶다. 나의 이 개무사병을.
그리고 만나고 싶다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