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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by 한아 Feb 07. 2025

 때는 설날 연휴였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운동을 다녀와 혼자 카페에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걸려온 동네친구 L의 전화. 할 일도 없는데 카페에서 같이 놀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콜을 외치고 L을 만났다. 각자 노트북을 가지고 와 수다를 떨면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할 일은 이번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무슨 여름휴가 계획을 설날부터 세우냐 했지만, 사실 명칭이 여름휴가지 회사에서 1년에 한 번 길게 주는 휴가를 언제 쓸지 그리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L과 나는 그동안 여행을 자주 함께 다녔다. 주로 주말을 껴서 1박 혹은 기껏해야 2박 정도의 국내 여행이었다. 짧은 휴가를 자주 낼 수 있는 나와 달리 L은 일 년의 한번 정도 긴 휴가만 가능했다. 그 긴 휴가를 그녀는 보통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자주 가족 여행을 다니는 그녀는 그 긴 휴가를 이용해 동유럽, 북유럽 등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부모님의 다른 일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고 했다. 휴가 이야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우리의 수다는 활기가 돌았다.


 여행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가 어느새 나도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그녀의 아주 짧고 작은 플러팅에 넘어가 결국 같이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여행 계획 세우기는 L의 할 일이 아닌 우리의 할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친구들과 휴양지를 같이 가보고 싶었기에 동남아에 가자고 주장했지만, L은 긴 휴가 때 동남아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결국 이야기를 하다 보니 후보지로 유럽이 떠올랐다. 내가 그렇게 긴 휴가를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제 10년 차인데 내 휴가도 내 맘대로 못 쓰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인? 남프랑스? 어디 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갑자기 크로아티아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예전에 꽃보다누나에서 나온 크로아티아를 보고 반한 적이 있었다. 반짝이는 푸른 바다, 햇볕에 빛나는 붉은 지붕, 그리고 햇볕을 여유롭게 즐기던 사람들까지.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사실 신나게 얘기하긴 했지만 갑자기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유럽에 가는 것은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것보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인데, 내가 가능할까 싶었다. 친구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했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짜 생각을 해봐야 했다. 가고 싶은 마음과 갈 수 있는 건 다르니까. 나의 통장 상태와 앞으로 들어갈 돈을 생각했다. 올해는 긴축재정을 시행하겠다고 세웠던 나의 신년계획도 떠올랐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렇게 멀리 친구와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 정도야 쉽게 갈 수 있지만 유럽은 아니니까. 고민은 짧았고 결정은 빨랐다. 돈은 또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일단 바쁜 일정을 최대한 피해 가며 날짜를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급 성수기는 피하면서도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날짜에 떠나고 싶었다. 정확한 일자는 회사에 출근해 회의나 다른 일정들을 더 살펴보고 정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일정을 잡고 나니 지루했던 일상에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나 유럽가. 

크로아티아 간다고~ 


올해는 별일 없이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이벤트가 생기다니. 한 해의 첫날(음력으로), 그 해의 최대 이벤트가 생기다니.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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