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衣食住)의 주(住) 해결하기
아웃소싱 업체에서 기숙사 출발 전에 기숙사의 주소와 비밀번호를 문자로 미리 보내주었다. 시외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켜 지도를 확인하니, 허허벌판의 한가운데에 빽빽이 늘어선 원룸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기숙사는 공장이 위치한 산업 단지 인근 주택지였는데, 놀랄 만큼 시골 풍경을 연상케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읍내와 전혀 다를 것 없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부분일까.
택시에서 서둘러 짐을 챙겨 내린 후에 비밀번호를 누른 후 현관을 열고 보이는 원룸의 풍경에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급히 짐을 챙겨 나간 모양인지, 현관 입구에 주문해 놓고 포장을 뜯지 않은 이사박스가 여럿 세워져 입구를 막고 있었고, 보일러실에도 사용하다 남은 듯한 수납함과 이사박스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 정도라면 화날 일도 아니며, 나를 분개하게 만들었던 것들은 다른 데 있었다.
옷장을 여니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눅눅한 이불과 숨이 다 죽고 때가 탄 베개가 들어있었고, 좌식 책상 에는 얼마나 맛있는 식사를 했는지 곳곳에 튄 빨간 국물의 흔적이 있었으며, 바닥과 화장실 하수구에는 그녀로 추정되는 긴 머리카락 뭉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또한 청소를 하기 위해 연 창문 틈에 꽂아둔 콘돔 한 박스와 냉동실 문을 열고 얼려둔 음식물 쓰레기를 발견하고야 말았을 때의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가 이 원룸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아무도 관리하러 오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었다.
더욱이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이자 최악인 것은 남향에 위치한 커다란 창문이었는데, 큰 도로변의 가로등 바로 옆이라 밤에도 낮과 같이 훤히 밝을 뿐 아니라 늦은 밤 귀가하는 술주정뱅이들의 대화도 원치 않지만 엿듣게 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또 화장실에 늘 거주 중이던 나방파리는 이 원룸에 정을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더욱 속이 아니꼬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럼에도 제공되는 기숙사가 시세보다 저렴하지 않고 오히려 비싸다는 점이고, 분하지만 선택지가 이 원룸에 사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 달 만에 집을 구하긴 했지만.
왜 아웃소싱에서 제공하는 원룸에 사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을까. 첫 번째 이유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구직자의 태반이 수중에 보증금을 낼 돈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웃소싱 업체와 파견직 계약 종류 후, 고용된 회사의 계약직과 정규직 전환 여부와 시점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집을 계약을 했지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부분 임대차 계약 시 최소 1년부터 계약이 가능한데 직무나 인간관계 등의 이유로 추노 혹은 퇴사를 고려할 경우 1년은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리스크가 생긴다. 이 세 가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보증금 없는 무보증금 입주 혹은 단기 계약을 시도할 경우 대부분의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월세를 올려 받고자 하기 때문에 비교하면 기숙사비와 동일하거나 비싸다. 결국 위와 같이 기숙사에 산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