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글쓰기 노동자의 일상기록(1)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1990년 발표된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 뜰 때>의 첫 문장이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였던 것 같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그리 흔하지 않았던 문예창작과였고, 그래서 뭉크의 화집이나 턴테이블은 몰라도 타자기는 무지하게 갖고 싶었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지금 말로 키보드에 프린터가 붙은 ‘워드프로세서’였다. MS워드나 아래아한글 같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말 그대로 ‘워드프로세서(Word Processor)’였다. 이걸 실제로 못 본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키보드 위에 입력한 문장을 몇 줄 디스플레이해주는 흑백 액정이 달렸고, 버튼을 누르면 ‘찌이잉~’ 도트 때리는 소리를 내며 프린트를 시작하는 기계였다. 프린터에 거는 전용용지 양쪽에는 뜯어낼 수 있도록 칼집이 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톱니가 구멍에 맞물리면서 종이를 밀어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워드프로세서를 갖지 못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가장 좋다고 하는 워드프로세서의 가격이 200만 원 정도였다. 내 기억이 정말 맞다면, 그때 사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 원이 채 안 됐을 것이다.
당시 전국에서 문예창작과가 설치된 대학은 몇 개나 됐을까? 정확치는 않지만 열 개도 되지 않았고, 그 중 절반 정도가 여대여서 남성인 내가 갈 수 있는 수도권 소재 학교의 수는 훨씬 적었다. 학교에 가면 교수들이, 인사동에 놀러가면 문인들이 ‘문학의 위기’를 걱정했다. 원고지를 볼펜으로 눌러가며 원고를 썼던 그들은 키보드를 놀려 글 쓰는 것을 일종의 편법으로 여겼다. 곧 영상과 컴퓨터 세상이 오면 문학은 종말할 것이다, 학생들을 겁주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 군대에 다녀오고, 졸업을 한 후 첫 직장으로 출판사에 들어갔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너는 어디에 다니냐고 물으셨다. 출판사요, 라고 대답했더니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출판사냐? 그러니까 왜 그런 놈의 학과에 들어가서···”
그 친구는 당시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고, 지금은 시를 쓴다.
워드프로세스가 안 되면 2벌식 전동 타자기라도 하나 갖고 싶었던 내 소원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386컴퓨터와 흑백 HP 잉크젯프린터를 사주셨다. 어머니가 몇 년을 걸려 어렵게 모은 곗돈을 타던 날, 내 방에 컴퓨터가 처음 들어왔다. 용산에서 컴퓨터를 팔던 친구가 직접 그걸 들고 왔다. 120메가 하드디스크에 4메가 램이 달린 녀석이었다. 컴퓨터를 들고 온 녀석에, 컴퓨터 구경하러 모인 다른 친구놈들 여럿을 위해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볶고 소주잔까지 얹어 저녁상을 내주셨다.
나는 흰색 케이스에 누런 땟국물이 줄줄 흐를 때까지 그 컴퓨터를 썼다. 주로 KOEI 삼국지 같은 게임을 하고, 전화선을 연결해 PC통신을 했다. 가끔 학교 숙제로 나온 리포트, 소설과 시를 썼고(문예창작과의 숙제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학기당 두 번 정도 시와 꽁트를 낸다),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인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집 <산타페>를 봤다. 컴퓨터가 느려서 사진 한 장 모니터에 띄우는 데 거의 몇 분씩이 걸렸다.
그 사이 ‘문학의 위기’는 계속됐다. 위기인데도 책은 많이 나왔다. 간혹 젊은 작가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했다는 얘기가 들리면 그것만으로 화제가 됐다. 곧 문학이 무너져 내릴 거라고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득세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더 많은 소설과 시들이 쏟아져 나왔고, 더 많은 책들이 서점에서 팔려나갔다. 케이블TV가 개국하면서 방송국이 많아졌고, 많은 기업과 관공서들이 사보(社報)를 찍어댔다. 진로가 마땅찮아 별볼일도 없고, 설치된 대학도 몇 개 없었던 문창과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졸업 동기들이 출판사를 넘어 방송국에, 광고회사에, 기업·기관 홍보실에 취업했다. 몇몇은 신춘문예 등을 통해 소위 등단이라는 걸 했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에는 꽤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작은 회사 신입사원 1년치 월급보다 많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광고회사에서 단행본과 사보를 만들거나, 사사(社史) 보조작가 등을 했는데 등단을 준비하거나, 이미 했거나 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술값을 내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가고 IMF외환위기까지 겪었다. 그 사이 내 발로 회사를 그만둔 적은 있지만, 잘려본 적은 없다. 핑계라면 핑계가 맞다. 글은 부모님이 생활비와 용돈을 주는 부잣집 자식들이나 쓰는 거고, 나는 가난한 집 장남이었다. 돈 벌 구멍이 이미 있는데 등단? 그런 걸 해서 뭐하게? 나는 그래서 글쓰기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문학의 위기따위는 이미 관심사가 아니었다. 반대로 글쓰기 노동시장은 비로소 활황이었다. 인터넷 세상이 열렸고,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사보기사를 써서 먹고살았다. IMF외환위기 속 아수라장을 비집고 계약직으로 중견기업 홍보실에 들어갔다가 정규직이 됐다. 얌전히 지금까지 잘 있었으면 임원은 몰라도 부장쯤으로 정년퇴직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운이 좋으면 촉탁직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고.
가끔 생각한다. 그때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소주잔을 앞에 두고 안주대신 파지(破紙)를 씹으며 원고를 쓰고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 ‘지금 써야 할 원고의 초안을 만들어줘’와 같은 프롬프트를 AI 채팅창에 입력하고 있을까?
전혀 알 수 없지만 미뤄 짐작은 가능할 것 같다. 1980년대 후반 문창과에 입학한 내 동기들 가운데 여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글 써서 밥을 먹는 사람은 더 드물다. 문학의 위기는 오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이게 내가 갖고 있는 글쓰기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글을 써서 밥을 먹는다. 물론 누군가는 또 그런 것은 글이 아니야 할지 모르지만. 뭐가 되어도 좋다. 하여튼 나는 그걸로 밥을 먹는다.
199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21세기가 열리기도 전에 인터넷 세상이 밝았다. 2010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혁명이 불어닥쳤고, 이제는 AI의 시대다. 사람들은 또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단지 ‘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창작의 위기’를 걱정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거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한 자라도 더 쓰고, 한 곡이라도 더 만들고, 한 장이라도 더 그려라. AI하고 싸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면, 그러기 위해서라도 AI와 함께 일해 봐라. 패배는 그 후에 선언해도 늦지 않다.
나는 지금 AI와 함께 일을 한다. AI와 함께 글을 쓴다고 하면(절대 AI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프롬프트 몇 줄 갖고 한 번에 글을 뽑아내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지만, 그 사실이 부끄럽지 않고, 껄끄럽지 않다.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 앞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이유가 있는가?
AI로 손쉽게 글을 뽑아낸다며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도 나랑 똑같이 AI로 해보세요.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한 번 봅시다.
나는 요즘 내 인생 어떤 순간보다도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 노동자로서 느낀 가장 큰 절망은 백지(白紙)의 공포와 대면하는 것이었다. 워드프로세스 창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두 시간 동안 바라본 적이 있는가? 거의 매번, 매순간 겪었던 그 공포를 AI가 해결해줬다. 나는 AI에게 방향과 구조를 묻고 샘플을 받아본다. 그리고 그것과 거의 상관없이 내 글을 쓴다.
전보다 많은 돈을 번다는 얘기는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지니까 잉여 노동력이 생겼다. 그래서 그걸로 브런치 연재도 하고, 언젠가 누가 볼지 알 수조차 없는 글을 즐겁게 쓰게 됐다. 그렇지. 노동자라면 이 정도 생산력은 내줘야지, 하는 일말의 긍지가 생겼다.
내 일생의 소원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백지의 공포가 사라진 순간, 글쓰기 노동자가 된 후 처음으로 글쓰기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AI 세상은 AI와 경쟁하는 세상이 아니다. AI를 잘 이용하는 휴먼의 세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AI와 한 번 잘해볼 생각이다.
AI가 너무너무 발전해서 진짜 기막힌 창작을 해대는 세상이 온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세상이 오더라도 내 경쟁자는 AI가 아닐 것이다. AI가 토스한 공으로 강스파이크를 때려대는 휴먼 글쓰기 노동자들과 여전히 경쟁하겠지. 방법은 하나뿐이다. AI와의 셰도우 복싱은 그만두고 그것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좋은 목수는 장도리질과 대패질, 톱질을 잘 한다. 세상의 그 어떤 목수가 장도리와 대패, 톱들과 경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