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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본아 Nov 26. 2024

07. 담배때문인가?

간접흡연일수도 있단 가능성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셔서 신께서 바쁘신 걸까. 그게 아니면 나의 기도가 신께는 크게 닿지 못했던가. 2022년 새해 초부터 허리 염증이 제대로 터졌다. 발바닥에 분포된 염증이 허리 쪽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구토도 하고, 목도 찢어지게 아프고, 잠도 못 자는데, 이제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도 힘들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제발 내게 좀 오지 말라고! 발악할수록 온갖 질병이 악착 같이 달라붙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나는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어 버렸다.     

아, 이번 년도도 계속 아파야 하나. 이 고통이 계속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그것이 나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고, 무섭게 만들었다.    

결국 신께서도 나를 버리시는 건가.     


“틀렸어! 틀러 먹었어!”     

아작이 난 허리를 부여잡고 새해 초부터 눈물바람이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눈앞이 깜깜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왜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그래.”

“비관적인 상황이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건강도 나아지고 그럴 수 있는 거야.”

“아픈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그땐 내 공포심이 극에 달해서, 좋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두려움 속에 갇혀서 미래를 마냥 걱정하게 되었다.     

“새해 초부터 아프잖아! 불길하다고!”     

내가 팔삭둥이라서 그래. 미숙아로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거야. 밑도 끝도 없는 자기 비하가 시작되며 내 영혼은 어느새 불안으로 휘감겼다.     

“나는 뭘 해도 안 될 팔자인가보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엄마는 내게 눈을 흘겼다. 그 불행 속에 빠져 슬픈 나는 움찔하면서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이런 자식이라 참 미안해.”     

훌쩍이는 나를 보며 엄마가 어이없는지 픽 웃었다. 그러면서 ‘으이구, 못 살아.’라고 하면서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건넸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부모님에게 편한 자식이기도 했다.     


어느 날 성인이 되어 존댓말을 쓰겠노라 선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이제 와서 변하면 이상할 것 같다며’ 하던 대로 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몇 번 존댓말을 시도했는데, 엄마 아빠가 어색하다며 오히려 존댓말 거부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부모님과 나는 밀착된 관계였다. 아마 성격적인 부분도 연관이 있는 게, 나는 농담하는 것도 좋아하고, 잘 조잘대기도 하고, 감정 표현이 많이 풍부하다.     

살아있는 리액션 맛집이 아닐 수가 없다고 할까. 엄마가 음식을 해서 맛을 보라고 하면 ‘오, 엄청 맛있다!굿!’이라고 하면서 따봉을 날리는 게 나의 성격이다.     


반면에 동생 S는 말수가 적고 할 말만 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의 스타일이 강한 S를 부모님은 좀 어려워했다.성향적인 부분도 한몫했지만, 동생S는 군대를 갔다 왔고, 제대 후에는 석사 과정을 밟느라 부모님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다.      


그에 반해 나는 부모님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집안의 대소사를 어쩌다 보니까 다 알게 되었고, 부모님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특히 우리 모녀 사이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게 친구 같은 모녀가 되고 싶다고 수도 없이 말해왔다.      


“제발 부정적이게 생각하지 마!”

“새해부터 비보가 터졌는데 부정적인 생각이 안 들겠어?”

“긍정적으로 생각해!”

“상태가 이런데 긍정회로가 어떻게 돌아가. 못해.”     

물론 내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서로의 감정을 편안하게 내비치는 사이.     

그렇지만 손이 조금 가는 자식이 바로 나였다.     

“봐, 새해 초부터 몸이 안 좋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그 다음 새해를 잘 보내겠다고 생각하면 좋잖아.”     

철이 없고 모자란데 과년한 딸. 그게 어느새 내가 되어 버렸고, 나는 제대로 된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죄의식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게 되자 부모님께 너무 미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건강은 누구나 안 좋았다가 좋아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안 좋은 부분을 치료하고 나아갈 생각을 해야지 않겠어?”     


그런 나를 엄마는 다독이며 조언을 해주었다. 

생각을 전환하면 상황은 언제든지 극복을 할 수 있다고.     


내가 또 맞는 말에는 기막히게 수긍을 잘 하는 자식이었기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와 함께 동네에 유명하단 통증의학과에 찾았다. 당시 코로나가 심할 때지만 오전부터 병원에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대부분 다 노인 분들이었고 젊은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한 시간 넘어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진료실 안으로 엄마와 함께 들어갔다. 의사는 50대 중반의 남자였고 천천히 의자에 앉은 나는 증상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허리 쪽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다고 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했고 기계 앞에 섰다. 간호사의 지시사항을 듣고 엑스레이를 찍은 후에 또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한참 후에 나는 다시 진료실에 들어왔다.     

의사는 ‘여기 보이시죠?’라며 엑스레이 한 부분을 가리켰다. 현재 이 요추 쪽에 염증이 엄청 심해서 그런 거라고 덧붙였다.     

“선생님, 혹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나요?”     

엄마는 얼른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고, 엄마는 별 거 아니라면서 내게 귓속말을 하며 안심시켰다.      

의사가 염증이 이 정도로 심해서, 허리 쪽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고, 또 한참 기다린 끝에 치료실로 들어갔다.  엎드려서 주사 맞을 준비를 하자 잠시 후에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주사를 맡을 부위를 꾹꾹 누르다가 ‘척추 부근에 주사액이 들어가면 뻐근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알겠다고 하자마자 내 입에서는 ‘으으으’ 괴기스런 음성이 터졌다.     


맙소사! 뻐근한 정도가 아니잖아! 

척추 뼈마디로 차가운 주사액이 지나가는 게 다 느껴지는 게 소름 끼쳤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주사를 맞고 치료실에서 나왔다.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나는 오후가 돼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사를 맞고 며칠 동안 회복에만 힘썼다. 계속 앉아 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갈까봐 꼿꼿하게 누워있기만 했다. 그러자 몸이 좀 나아졌다.     

어라? 허리 염증 때문이었던가?     

희망을 품었지만 며칠 지나 고통이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내 영혼은 지쳤고 그저 무료하게 숨만 쉬며 하루를 보내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무기력한 나날들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빠는 퇴근해서 돌아왔다. 씻고 아빠는 거실에 위치한 소파에 본인이 좋아하는 위치에 앉아 TV를 봤다. 그러면 엄마와 나도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서 아빠와 함께 TV를 시청했다.  프로그램을 보며 간혹 이야기도 하고, 소파에 누워있는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구수한 발꼬락 냄새도 맡으며 아프면서 나름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게, 어느덧 나의 작은 행복이었고, 그것이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시간이었다.     


잠시 뒤에 아빠는 내일을 위해 취침을 하러 안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무얼 보고 있었고, 나는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슥 쳐다봤다. 상기되고 피곤해보이고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는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나는 구토를 하면서 양치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괜찮다가도 양치를 하다가 갑자기 토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했기에, 나는 양치할 때 구토하지 않으려, 최대한 구강을 자극하지 않게 노력하며 닦았다. 그렇게 신중하게 닦았고, 다행히 토를 하지 않았으며, 비로소 안심을 하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당연히 소파에 있는 반려견을 보기 위해서, 나는 거실로 향하다가, 안방 옆에 위치한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양치를 하기 전에는 꺼져 있었지만, 방금 자러 들어간 아빠가 그곳에 서랍장을 열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무심코 옆에 봤는데 안방 문은 왜인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빠, 뭐 찾아?”

“아니. 그냥.”     

아빠는 그렇게 말했고 거실에 있는 엄마가 대신 말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그 지인이 남동생 S의 결혼식에 왔었고, 축의금 명단에 적힌 금액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수긍하고 돌아서려는데 뭔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아빠, 혹시 안방에서 담배 폈어?”

“아니.”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아니야. 나 잔다.”     

갑자기 아빠가 황급하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문이 확 열리고 닫히면서 아까보다 더 강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어? 담배! 담배 냄새 나는데?”     

엄마는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나는 안방에서 담배를 핀 것 같다고 답했고, 엄마는 냄새를 맡다가 곧장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엄마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해!”     

우리 집은 화장실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안방에 딸린 화장실이고, 다른 하나는 복도 쪽에 위치해 있었다.  “향수도 뿌리고! 파스도 뿌리고! 담배도 피고! 이 냄새 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여기 화장실에서 피면 안 돼!”  

엄마는 잔소리 폭격을 날리고 안방에서 나왔다. 

짜증을 내며 씩씩거리는 엄마를 보니까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곧이어 엄마와 반려견도 잠이 들고 나는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와서 멍을 때렸다.  아빠를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멍하게 인터넷 서핑도 하다가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데…….     


또, 또! 목이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혀가 붓고, 목구멍을 철사로 긁어내리는 것 같은 고통, 그 느낌이 또 느껴지자 반사적으로 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가 넘었고, 문득 내가 목이 찢어지게 아프고 숨이 가쁘며 호흡이 어렵게 되자, 내가 항상 겪던 고통의 패턴이 떠올랐다.  


늘 이 시간쯤이었다.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나는 같은 아픔을 겪었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딱 떠올랐다.     


아빠는 흡연자로서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취침에 들기 전에 한 대를 피우고, 

새벽에 깨서 한 대를 피운 후에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잔다고.     

엄마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혹시 담배 때문인가?'    

원인불명으로 아팠던 게 아빠의 실내 흡연 때문인가. 간접흡연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2022년 1월 말에 내게 작은 희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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