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도심은 월세가 비싸지만 걸어서 학원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장차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해맑게 도심 아파트에 입성했다. 첫날부터 거슬렸던 것은 아니다. 계약일이 거의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던 밤, 내 귀에 들린 것은 화장실의 ‘우웅’하는 물 펌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빨간 버튼’이 양변기의 다리 부분에 붙어 있었다. 버튼을 반대쪽으로 누르니 소리가 멈췄고, 곧 고요해졌다. 나는 흡족해하며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물난리가 난 방의 한가운데서 깨어났다. ‘아……. 큰일이 났구나.’ 수습을 위해 배관공 등이 다녀간 후, 아파트 대리인이 거실 공용 전화로 연락을 해 왔다. 변상 액수를 통보하기 위함이었다.
대리인은 ‘빨간 버튼’에 안내 문구를 붙이지 않는 자기 쪽 잘못도 있으니 반반씩 지불하자고 말했지만, 총 수습 비용이 얼마인지 내역을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반반이 아니라, 백 퍼센트 변상하라고 해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달간 집을 빌려 들어갈 때부터 수리비를 물어주고 나올 때까지 집주인도 대리인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가 꼽는 행복의 전제 조건이 있다. 병원, 경찰서, 법원에 가지 않는 일. 힘없는 서민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남의 재산에 손해를 끼친다는 건, 자칫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 무서운 일이었다. 그때, 빨간 버튼을 아무 생각 없이 누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오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