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뉴질랜드에서는 총 네 번의 홈스테이를 했지만, 식사에 대한 즐거움은 결핍된 생활이었다. 달랑 밥과 카레임에도 매일 반복되거나, 고양이털이 묻은 반찬이거나, (그래도 얌전한 착한 고양이였다.) 반찬이라곤 없는 단품이거나. 때로는 삼킬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음식도 있었다. 하지만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은 언제나 호스트가 제공하는 음식을 먹었다. 그나마 사 먹는 것보다는 저렴했으니까.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돈이었다. 외곽 홈스테이나 도심 월세나 별 차이 없이 백만 원이었고, 버스비를 타고 시내에 들어오면 편도에 오천 원이었다. (물론 더 저렴한 숙소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당시의 나는 열악한 숙소를 견딜 만큼 더 이상 젊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세 시에 퇴근하는 현지인을 목격하는 것은 놀랍기만 했다. 저렇게 일해도 이런 물가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건가. 뭔가 부럽네.
뉴질랜드에서의 일상을 포기하고 일찍 돌아온 것은 ‘늘지 않을 언어 실력’에 대한 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물가 때문이기도 했다. 만일 동남아에서처럼 자금 압박이 덜 한 환경이었다면 언어 습득과는 관계없이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커녕 오천 원짜리 호떡 한 개를 삼키는 데도 약간의 결심이 필요한 고물가 환경은 음식을 먹는다는 일상의 큰 즐거움을 앗아갔다.
두 번의 워킹홀리데이로 얻은 것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부모님에 대한 ‘감사’다. 내 배가 고픈지 정말로 궁금한 사람, 부모라는 이름. 세상 모든 부모들의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하나같이 똑같은 걱정은 괜한 물음이 아니다. 품 떠난 자녀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