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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좋아!

by 소소산

안정적인 승차감이나 도착 예정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지하철을 선호한다. 하지만 요즘은 가급적 버스를 탄다. 시력을 위해서는 하루 20분 이상 멀리 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다. 사실 의식하고 걸으면 20분쯤은 얼마든지 멀리 볼 수 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고작 1-2미터 앞의 땅을 보거나 3-4미터 옆의 간판을 보면서 걸었던가. 이제는 몇 백 미터 앞을 내다보며 걸으려고 노력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느낌이랄까. 저기에 저런 건물이 있었는지, 그 건물 이름이 뭐였는지, 저런 장식이 붙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래도 걸으면서는 하늘을 꽤 올려다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제는 한껏 의식하면서 저 멀리 무엇이 있는지 새로 발견해 가며 걷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반대쪽 문 위의 노선도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 노선도라면 가장 큰 글씨인 '몇 호선'인지만 보이고, 노선 하나만 그려 놓은 확대판에서는 환승역을 표기한 글씨만 보인다. 환승역은 볼드체로 적혀 있어서 식별하기가 조금 수월한 탓이다. 우선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환승역이 아닌 역까지 읽어내는 것이 목표다.


버스에서는 버스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지는 않는지 살펴달라는 당부 문구나, 현금은 받지 않는다는 안내판이 얼마나 보이는지 체크한다. 그러나 버스에는 '창'이 있다. 때문에 대개는 저 멀리 떼 지어 있는 아파트나 손톱만큼 엿보이는 산을 보려고 한다. 비록 지하철보다 자주 멈춰 서고 더 오래 걸리는 버스지만,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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