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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번개, 광시증

by 소소산

이제나 저제나 과연 언제 끝날까, 비문증이 시작된 날을 헤아려 보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다. 요즘은 보이지 않아 마음 놓았던 광시증. 눈앞에 번쩍이는 모든 것을 '광시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번개에는 총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알을 굴릴 때 나타났던 백색 플래시. 이 빛은 내가 만든 상황에서의 빛이라 다시는 눈알을 굴리지 않았고 두려움에 떨며 안과로 달려갔다.


두 번째, 밝은 곳을 볼 때 나타났던 황금색 번개 아이콘. 5~7초간 사라지지 않던 불빛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안과에서 의사가 내 눈동자에 불빛을 비추면 보이곤 하는 망막 혈관 같기도 했다. 눈부시게 밝다는 점만 달랐을 뿐. 역시나 공포를 끌어안고 안과로 달려갔다.


세 번째,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면 꽃처럼 피어오르던 백색 유리 파편들.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조각의 크기가 커지면 사라지고, 또 새로운 불빛이 연이어 터지곤 했다. 이 불빛 덕에 며칠이나 잠을 설쳤지만 이번에는 안과로 달려가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했던 광시증이 새롭게 출몰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눈을 뜬 어둠 속에서였다. 첫 번째 플래시와 유사했지만, 눈을 뜬 상태에서 보이다니 좀 더 당황스럽달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슷한 증상이 반복되니 공포에는 무뎌졌나 보다. 안과로 달려가기보다는 또 한 번 셀프 점검을 해 본다. 한쪽눈씩을 가리고 날파리가 얼마나 보이는지 시야가 가리는 곳은 없는지 말이다.


나의 유리체 박리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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