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은 1544년 11월 15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은 38년 2개월.
그날, 실록에는 그에 대한 사신(史臣)들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사신은 논한다. 인자하고 공검한 것은 천성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진성군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를 내치고 박빈(朴嬪)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과 당성위를 죽여 부자간의 은의가 어그러졌고,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야박해졌으니 애석하다.』 (《중종실록》 1544년 11월 15일)
처음 이 대목을 봤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지들이 등 떠밀어서 저런 몹쓸 짓을 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비난을 해? 해도 너무 하는구먼.'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사신의 평가가 맞았다.
포인트를 여기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사신의 의도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명대사가 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 보두앵 4세(에드워드 노튼)가 주인공 발리앙(올랜도 블룸)에게 충고하는 장면이다.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할 순 없네. 그런 건 통하지 않아. 명심하게."
(When you stand before God, you cannot say... "But I was told by others to do thus," or that "Virtue was not convenient at the time." This will not suffice. Remember that.)
이 명대사를 중종에 맞게 살짝 바꿔보자.
"이봐, 어찌 됐든 결국 국왕인 네가 도장 찍은 거 아냐? 박원종이 시켜서 신씨를 내쫓았느니, 당시에는 경빈과 복성군을 내치고 죽일 수밖에 없었다느니, 이런 말은 통하지 않아. 그건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구."
사신이 중종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이렇지 않았을까?
자, 대신들이 중종에게 했던 행동을 똑같이 태종 이방원에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신하들이 먼저 태종에게 원경왕후를 폐하고 죽이라고 했다면? 양녕을 폐하고 세종을 세자로 삼을 것과 훗날 화근을 없애기 위해 양녕을 죽이라고 요구했다면?
아마 그 말을 꺼낸 사람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종의 성격상, 곱게 죽여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중종에겐 태종과 같은 결기, 단호함이 없었다.
처음에 박원종을 위시한 반정 공신들이 신씨를 내치라고 요구했을 때, 그때 단호하게 끊었어야 했다.
"어라? 너희 지금 이거, 선 넘는 거야. 내가 아무리 너희들에 의해 왕위에 올랐지만, 지킬 건 지켜."
이 말 한마디를 못하고 꼬리를 내리고 신씨를 내쫓아 버렸으니,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던 것이다.
신씨를 내쫓으라고 요구한 대신들도 속으로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겠는가?
'어라? 이걸 받아들여? 연산이었음 당장 끌어내서 목을 치라고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저놈 저거 호구다, 호구.'
이것이 중종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박원종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내쫓고 세자 이황마저 죽여버리고 난 후, 중종은 대체불가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른 왕자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어나더 레벨'이었다. 연산군 외에 성종의 유일한 적자(嫡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원종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또다시 반정을 일으켜 중종마저 내쫓는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이걸 중종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종에게 눌려 찍소리도 못 했던 것을 난 그의 기질, 성격상의 문제로 본다.
아마 중종은 흔히 말하는, 기가 매우 약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국왕으로써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중종에게 대신들을 휘어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반정의 주역 박원종은 1510년에 죽었고, 유순정과 성희안도 1513년에 죽었다.
반정 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셈이다.
그런데도 중종은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 후로도 계속 끌려만 다녔다.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1519년 11월 9일, 공신 명단 개정 문제를 두고 벌어진 난상토론이다.
그로부터 1주일 전, 정광필 등은 중종에게 정말 문제가 많은 일부 공신들을 제외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라고 제안했다.
그들의 제안에 따라 중종이 고심하여 제외할 명단을 제시했는데, 이걸 조광조가 무시했다.
그때 정광필을 비롯한 대신들은 중종이 아닌 조광조의 편을 들었다.
앞서 이미 이것이 정광필의 잘못이라고 지적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간 중종이 얼마나 만만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광필이 중종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인정했다면, 그를 조금이라도 두려워했다면, 조광조의 편을 들기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이보게, 주상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그대도 한발 물러서야 하지 않겠나."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대신들만 중종을 만만히 본 게 아니라, 경빈도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문정왕후가 이어할 때 경빈의 사위 김헌경의 집에서 음사가 벌어졌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중종의 반응이 이러했다.
『전교하기를, "지금 차자 올린 것을 보고 내가 매우 놀랐는데, 이 일은 내가 전혀 듣지 못한 것이다. 대저 간특한 음사(淫祀)는 내가 평소에 몹시 미워하는 것인데,..."』 (《중종실록》 1525년 윤12월 16일)
중종은 분명 그런 일을 혐오한다고 밝힌 바 있고, 아무리 경빈과 복성군을 가장 사랑한다고 해도, 인종과 문정왕후 역시 그의 가족이었다.
즉, 중종이 직접 경빈에게 음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경빈은 음사를 멈추지 않았다. 왕의 의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이 모든 문제점이 한 마디로 압축된 표현이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였던 것이다.
난 중종을 보며, 유비의 아들 유선이 떠올랐다.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이었을 때, 사실 촉의 조정은 제갈량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다.
유선은 제갈량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촉한의 실질적 황제는 제갈량이었다.
그런 제갈량이 북벌 도중 오장원에서 사망한 후에도, 유선은 권력을 되찾아 오지 못했다.
그저 정치질을 통해 권신들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정도에 그쳤다. 중종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제갈량과 박원종이 죽고 나서도 유선과 중종이 조정을 휘어잡지 못하고, 대신들에게 계속 끌려다닌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왕은 아랫사람들에게 한번 만만하게 인식되면 끝장이라는 것.
이와 관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군주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사람들이 배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해칠 때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해칠 때 덜 주저한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조정에서는 그의 묘호를 '중종(中宗)'으로 정하고 이를 인종에게 보고했다.
이때, 인종은 아버지의 묘호를 '중조(中祖)'로 정하길 원했다.
『전교하기를,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하건대 부왕께서 폐조의 혼란한 때를 당하여 어지러운 것을 다스려 반정하고 종사를 40년 동안 또 편안하게 하셨으니, 중흥시킨 공이 작다 할 수 없다. 그래서 조(祖)라 칭하고자 하는데 첨의가 어떠한가? 중(中)자가 중흥의 뜻이라고는 하나 또한 흡족하지 못한 듯하니, 세조의 예(例)에 견주어 종(宗)자를 고치고자 한다."』 (《인종실록》 1545년 1월 6일)
인종의 바램은 대신들에 의해 가뿐히 무시되었다.
『윤인경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신들이 다시 함께 상의하였으나, 조(祖)자 위에는 달리 알맞은 글자가 없고 세(世)자가 있을 뿐인데 이미 세조의 묘호가 있으니 합당한 자가 전혀 없습니다. 또 역대의 임금 중에 특별히 조자로 칭한 경우가 없으며 조는 공이 있는 것이고 종은 덕이 있는 것이니, 종자가 어찌 범연한 것이겠습니까."』 (《인종실록》 1545년 1월 6일)
이때 대신들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적어 보면 이렇지 않았을까?
'뭐? 저런 호구한테 조(祖)를 붙인다고? 하이고야,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됐다. 고마 치아라.'
중종 치세 말기,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대사간 구수담이 아뢰기를, "풍문에 의하면 간사한 의논이 비등하여 ‘윤임을 대윤이라 하고 윤원형을 소윤이라 하는데 각각 당여(黨與)를 세웠다.’ 합니다. 그 실정을 따져보니, 윤임은 부귀가 이미 극에 달했고 원형은 청년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좋은 벼슬을 역임하였으므로 이미 부족한 것이 없는데 무슨 일을 일으키려고 다시 당여를 세운단 말입니까?"』 (《중종실록》 1543년 2월 24일)
이때만 해도 중종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듬해 대신들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상황이 심각했다.
『대사헌 정순붕이 아뢰기를, "대윤·소윤이라는 말은 일어난 지 이미 오래고 점점 표적이 되어, 어느 재상은 어느 윤(尹)의 당이라고 지칭하여 대소 두 길로 가르니, 어찌 이러한 일이 있습니까. 재상들 중에 그 당에 들지 않은 자일지라도 다 의구(疑懼)하고, 당이라고 지칭되는 자는 다 스스로 벗어나려고 꾀합니다. 사람이 혹 윤임을 보러 가면 대윤의 당이라 지칭하고 윤원형을 보러 간 자는 소윤이라 지칭하므로, 대소가 의심하여 서로 찾아가지 못하고, 집을 옮겨 살려는 자까지 있습니다."』 (《중종실록》 1544년 9월 29일)
이에 대한 중종의 대응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다.
『상이 이르기를, "깨뜨리는 것이 좋겠다. 이 무리를 모으면 후환이 매우 클 것이다."』 (《중종실록》 1544년 9월 29일)
그는 그러고선 대신들과 논의하지 않고, 불러서 의논(議)을 내렸다.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 우찬성 성세창, 좌참찬 권벌, 우참찬 허자, 병조 판서 정옥형, 공조 판서 유인숙, 형조 판서 상진, 예조 판서 임권, 이조 판서 신광한, 호조 판서 임백령, 대사헌 정순붕, 대사간 임억령이 부름을 받고 빈청(賓廳)에 나아가니,
상이 의논을 내리기를, "윤임·윤원형은 다 지친인데 나도 어찌 돌볼 일이 없으랴마는, 큰일은 일찍부터 막지 않을 수 없다... 구수담이 그 기미를 발설하여 그 간사한 말을 진정하려 하였으나 내가 그 호오(好惡)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 말이 이제까지도 그치지 않는다. 윤임은 간흉에게 간사한 의논을 맨 먼저 내어서 이제까지도 그치지 않게 하였으므로 지극히 그르니 외방으로 귀양보내야 하겠고, 윤원형은 이렇게 진정되지 못하게 하였으니 파면해야 하겠다."』 (《중종실록》 1544년 9월 29일)
의논에 적힌 내용을 쉽게 풀어써보자면 이정도가 되겠다.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지? 윤임은 지극히 잘못했으니 귀양, 윤원형도 잘 한건 없으니 파면. 됐냐?'
분명 윤임과 윤원형을 둘 다 죄주고 있지만, 이건 사실상 중종이 윤원형과 소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중종이 내린 의논에 대신들이 깜짝 놀랐다.
『의논이 내려지자, 재상들이 모두 서로 돌아보며 실색(失色)하였다.』 (《중종실록》 1544년 9월 29일)
예상과 다르게 사태가 전개되자 대신, 대간이 윤임과 윤원형, 둘 다 죄주지 말 것을 청했다.
그래도 중종은 꿈쩍도 안 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발의된 처음에 내가 즉시 폄척(貶斥)을 보여서 스스로 근신하도록 하였더라면 왜 이와 같이 그치지 않았겠는가. 지금 또 그 사실을 알면서 내버려 둔다면 필시 더욱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폄척하는 뜻을 보여야 인심이 스스로 안정되겠기에 할 수 없이 이렇게 한 것이다."』 (《중종실록》 1544년 10월 1일)
중종의 말은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다.
또한 그의 말에서 이제야말로 그가 제왕의 모습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말에 휘둘릴 게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주도권을 갖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졌어야 했던 것이다.
중종의 치세는 냉정히 보자면, 그를 비롯한 모두에게 있어 서로 못할 짓을 해대게 만든 시절이었다.
그가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정치질만 해댄 탓에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을 제 손으로 죽여야 했으며, 나라 전체적으로는 조정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목숨 건 권력투쟁의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비록 40여 년을 제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권력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중종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드라마 '대장금'에서 중종의 유행어, "맛이 좋구나."를 빌려 '(권력)맛이 좋구나.'라는 소제목을 달았었다.
그에게 물어본다. "권력맛이 어떠셨는지?"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권력맛? 좋지. 암, 좋고 말고. 그런데 말이다. 마냥 달지 않더구나. 어떤 때는 너무 써."
그의 말에 내가 대답한다. "Bitter Sweet Symph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