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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Oct 23. 2024

다애-All Love(2)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달란트 바자회를 가장 좋아했다. 우리 봉사팀은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가져오고,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구입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의류, 장신구, 생필품을 샀다. 올리브0에서 화장품도 사고 인터넷으로 운동용품도 구매했다. 그리고 달란트를 나눠주며 규칙을 설명했다. 우리 반에서 수업하면 다툼이 늘 골칫거리였다. 다애 학생들도 탐나는 물건을 두고 싸울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단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로 같은 물건을 사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때 “양보해요.”라고 아이들이 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멈칫했다.


  ‘아, 이 아이들은 서로 경쟁할 마음이 없구나. 욕심부리지 않고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구나.’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역시나 바자회는 평화롭게 끝났다. 마무리하려는 데 니콜이 다가와 하얀 티셔츠를 내밀었다. 내 선물이란다. 나는 원피스 위에 당장 덧입고는 아이들 앞에서 자랑했다. 그런데 ‘비비고 비비고’,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티셔츠 오른쪽에 ‘bibigo’ 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직원이 왜 이렇게 많냐고 의아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웃음이 났다.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갈 때마다 아이들 생일을 챙기는데 주인공인 라마잔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천연석에 이름을 예쁘게 새긴 도장을 준비했는데, 본국인 카자흐스탄으로 갑자기 가게 됐단다. 아이들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만 부모가 불법체류자여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그러면 학생과도 연락이 끊겼다.


  이제 곧 겨울방학이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모범생 에네스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지원해 결과를 기다린다고 했다. 붙임성 좋은 체첵은 관광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수백 명의 졸업생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고 성적도 우수하다며 교장선생님께서 어깨를 으쓱이며 말씀하셨다.


  이곳 학생들은 일반 학교에서 미숙한 한국어로 어려워하다 위탁기관인 다애학교로 왔다. 도중에 포기할 수도 있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1년 전보다 우리말도 몰라보게 늘고 굳었던 표정도 말랑해졌다. 학교에서는 멀리서 오는 학생들이 많아 세끼를 제공한다. 여러 단체와 개인의 따스한 손길 덕분이다. 언어도, 국적도, 처해있는 상황도 저마다 다르지만, 이 울타리 안에서는 몸도 마음도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어른이 어린이를 온전하게 길러내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봉사’는 사전적으로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을 의미한다. 나는 봉사하러 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돌본 것은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항상 웃으며 반겨주고 무엇이든 귀 기울여 반응해 주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어디선가 달려오고, 처음 먹어보는 떡과 오란다를 주어도 고마워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은 내가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도 그들에게 배웠다. 나는 그저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놀며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따스한 햇살의 온기로 차분한 오후,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첩을 펼친다. 그리고 종이 위에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적어 내려간다. 글자 틈으로 귀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수업 시간에 채색한 머그잔에는 파키스탄 소녀 마디하가 그려준 네 잎클로버가 반짝인다. 비뚤거리는 글씨로 ‘사랑합니다’,라고 적은 글귀가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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