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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지기 Sep 22. 2024

시제 15호

거울속의 내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나는 거울이 없는 방 안에 갇혀 있다.
방 안에는 거울이 없지만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무섭고 두렵다 이것은 폭력과  학대이다.
나는 지금 외출 중인 그를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
그가 나를 벗어나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그가 나에 대하여 무슨 음해를 하고 있을까.
그가 나를 어떻게 무참히 살해 할까.
분해와 조립, 토막과 절단, 출혈과 압박
동맥과 정맥의 혈관, 급소와 경혈(經穴)
그가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여기 있을 수 있을까.

공포의 무게를 안고 땀에 젖어 눅눅한 침상에서 잠들었다.
꿈속에서조차 나는 나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군화 속에 구겨진 낯선 의족이 나의 꿈의 순백을 더럽혔다.
이곳은 꿈과 현실의 지평선이다.
이 꿈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다리는 없다 혹은 있다.
무엇인가. 알수없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다리를 절단 하여야만 한다.
나는 철저히 배제된 손님일 뿐이다
나는 철저히 지배된 손님일 뿐이다.
그렇담 나는 어떤 존재인가 꿈속의 나인가
그렇담 나는 어떤 존재인가 현실의 나인가
알 수 없다 알고싶지 않은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알고싶다.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알고싶다. 꿈인지 현실인지
그 무엇도 아닌 이미 사-후의 세계인지
혹은 그또한 아니라면 탄생의 모습인지.

거울이 있는 방으로 몰래 들어가려 했지만,
동시에 거울 속의 내가 나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연민, 인연, 측은, 가엾거나 딱하고 그런 불쌍함인가.
참으로 형편없게 마르고 폐인같은 모습이다.
거울속의 나와 연쇄적으로 눈이 마주칠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가둔 죄수,
동시에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
거울 너머로 나가고 싶지만,
서로가 서로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
나는 결국 그에게 자살을 권했다.
창문 없는 방 안에서 그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들창을 가리켰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을.
거울 속의 그는 나처럼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머리를 빛이 굴절하는 금속으로 감싸고,
거울 속 나의 미간을 겨누어 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그를 뚫고 지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심장은 여전히 뛰며 그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곳은 나의 총알이 닿지 않는 곳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것이다.

모형 뇌에서 흘러나온 붉은 잉크가 방을
잔인하고 역겹게 물들였다.
나는 꿈에서조차 지각했고,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흐느적 거리는 꿈과
나의 통제가 불가능한 강압적인 현실이다.
그 안에서 서로를 맞잡을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죄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지만,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괴로움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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