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나의 생일이지만, 세상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싶지도 않다. 세상은 이렇다할 사실들을 외면함에 나는,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차갑고 쓰라리고 창백하다 아픈듯 아니하고 거슬리며 다른듯 아니하고 비슷하다 그러나 그 다름이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해질 무렵 마치 실체가 없는 그림자로 어린 시절의 나를 스스로 돌아본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이 의미없게 깨트려진 오늘이다. - 주머니 속에는 구겨진 오천원권 두 장과 천원권 네 장이 있다. 지폐는 습기와 담배를 머금어 낡고 축축하다. 손끝으로 지폐의 뱃살을 더듬었다 그 질감은 나의 오늘을 대변하듯 피부가 거칠다. 구겨진 돈, 구겨진 하루, 구겨진 나. 초라한 오늘, 초라한 현실, 초라한 집 나는 그 모든것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 누군가를 만나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뜸하다 하지만 만나본 그 누구는 누구인가. 나는 기억이 날듯 하지만 결코 기억하지 못했다. 이토록 어두운 마음이 나를 삼키려 한 적이 있었나, 적적하니 의미없이 전화번호 목록을 뒤져본다. 이름 없는 기록들. 광고, 여론조사, 보험과 대출안내. 차갑고 비정한 숫자들이 내 머리를 채운다. 차갑고 비정한 숫자. 들이 내 머리를 채운다. 연락처 속에 의미 있는 번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휴대폰 전원을 껐다. 누구도 나의 휴대폰 전원이 꺼져있는줄은 모를것이다. 어두운 침묵이야말로 나는 나 자신과 가장 가깝다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기억 속에서 흩어지려 할 무렵이다. 스스로를 겨우 붙잡고 있지만 왜일까, 살며시 놓고싶은 마음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 손끝에서 담배 한 개비가 타오르며 연기도 피어오르길. 그 연기는 나를 감싸안고,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다만 불안은 고요하게 나를 짓누르고 나를 천천히 흩어지지 못하게 억누른다. 나의 존재는 그 연기처럼 바람을탄다. 나의 존재는 그 담배처럼 타들어간다. 나의 그 슬픔은 아무도 이해 못한다. 나의 그 아픔은 아무도 이해 못한다. 오늘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특별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날. 내가 세상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던 날 다시 세상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을 날 정답이 없다 아니, 모르겠다 생각이 멈췄다 세상이 멈췄나, 기억하지 못하겠다. 지겹고 지루하고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가 오늘인지 어제인지 내일인지 모르는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나의 결말. 그것만은 알것같다. 그것만은 괴롭도록 알것같았다. - 거리의 소음이 나의 고막을 찢으려든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 공터 재개발 공사 소리, 윗집의 청소기 소리 모든 것이 분명하지만 나와는 상관없으려 한다. 그들은 움직이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차이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방은 어떤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나의 꼴은 어떤가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가, 연탄을 기다리는지. 나는 지금 어떤 기대를 하는가, 매듭은 아름다울지. 나는 이 자리에 있지만, 여기는 어떠한 의미 따위조차 없는 자리이다. 나의 마음은 이곳이 아니다. 마음은 어떠한 초대도 받지 못했을뿐이다.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긴 여행을 떠나는것이다. 나름 멋진 여행이 될듯하다. 지평선의 넘어에다 깃발을 꼽고 돌아오는것이다. -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한 지 몇 년째인가. 이제는 그 숫자따위 의미가 없지 아니한가. 단지 지나간 시간일 뿐. 숫자의 조합일 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겨진것도 어느 하나 없으니 나의 시간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멈추는 것이다. 나는 담배를 태운다. 그렇게 잡 생각에 얽혀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것이다. - 나의 정신은 여전히 이곳에 있지만, 나의 몸은 흩어졌다. 나는 그 흩어진 조각들을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담배를 다시 또 태워본다. 술과 담배 악기와 연필 그것들이 나의 전부였다. 연기를 뿜는다. 그 일산화탄소와 뜨거운 포옹. 나의 삶 전부였다. 그리고 그 연기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너무 조용했어서일까 나는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후에 흔적마저 사라진 채 발견된다. -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나의 생일이지만 세상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이렇다할 사실들을 외면한다 외롭고 쓸쓸한 고독을 원했는가. 차갑고 창백한 무엇을 기다렸나. 어느 누구에겐 그저 평범한 하루 아닌가. 그런 나에게는 이리 괴로운 하루 였던가. 세상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하고 이곳은 여전히 침묵으로 가득하다 오늘은, 나의 기념일이다. 오늘은, 나의 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