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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김에 뉴질랜드 Feb 24. 2024

겨울이 맞네. 뉴질랜드의 겨울

나무로 만든 집에서의 겨울은 혹독하다.

우리가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는 7월이었다. 뉴질랜드의 겨울에 도착한 것이다. 

떠나기전 나는 짐싸기 담당자였다. 7월이 뉴질랜드의 겨울이라고 들어 놓고, 검색도 해보지 않고 그냥 가을 옷만 대충 챙겨 넣었다. 대신 딸의 옷은 겨울 옷과 가을 옷으로 넉넉히 챙겼다. 그런데 내가 가을 옷만 챙긴 이유가 호주의 겨울에서 느꼈던 단편적인 느낌이 뉴질랜드도 같다는 같음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18년 전 처음 호주를 갔을 때, 호주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나는 "오우. 겨울. 별거 아니네. 어그도 필요 없네. 슬리퍼면 충분해. 게다가 많이 안 추워 안 추워. 이 정도 군 훗훗. 할만하다. 날씨가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네." 이렇게 생각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와 20대 초반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몸이었는데. 20대 초반의 나는 이태원 소방서 뒤 한남동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에 새우깡만 놓고 소주 2병을 기분 좋게 먹고, 룰루 랄라 노래를 부르며 준비해 둔 맥주 피쳐를 절반 정도 먹고 거기에 소주를 부어 소맥을 먹던 체력 좋고 정신력 좋고 건강하고 건장했던 때였다. 가끔 바지 지퍼가 터질 듯 말 듯 해서 친구가 바지 단속을 시킬 정도였으니 그때의 나는 통통하니 건강하던 때였다. 

 게다가 나의 엄마와 아빠는 항상 말씀하셨었다. "제발 덜렁대지 말고 침착하게 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은 깊게 생각해 볼 문제들도 있다고. 그리고 H.O.T. 노래 좀 그만 불러." 그렇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토니 안 오빠가 나오는 동물농장은 아파도 꼭 봐야 히고, 여전히 덜렁대고, 단순하다. 아픈 지금은 더 단순해지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져 버렸다. 

"모든 일에 알아서들 잘 되겠지, 지금 나는 살았잖아. 그럼 된거지."

아무튼  그래도 다행스럽게 딸의 옷은 겨울 옷과 패딩, 내복, 런닝등 챙겨 왔다. 내 딸은 소중하니까. 아이가 기침만 해도 아픈 엄마는 눈물이 또르륵 흐른다. 내가 초유도, 젖도 못 먹이고 키워서 면역이 다른 애들보다 떨어져서 아이가 기침을 하나? 이런 자괴감과 어릴 때 가정 환경이 우울해서 면역이 떨어졌나 과대망상도 하게 된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나는 매일 울며 병약해 누워 있고, 목소리는 쉬어터져서 나오지도 않고, 기침은 계속해대고, 약은 못 삼키겠다고 외할머니와 실랑이하고, 먹기만 하면 설사 때문에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외할머니는 베란다와 부엌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하며 울고, 내 딸의 아빠이자 나의 남편은 내가 먹을 수 있게 약을 갈아주고, 먹을 수 있는 게 고구마 밖에 없었을 때는 고구마를 연신 까서 잘 먹어보라고 나에게 계속 이야기하고, 나는 계속 짜증과 화를 내다 젊은 나이에 억울하다 울부짖고, 보행기를 끌고 안방으로 와도 아빠가 엄마는 쉬어야 하니까 닫힌 문을 보행기로 두드리면 안 된다고만 말하는 상황이었다. 어린 아이도 느꼈을 것이다. 

"음, 집안 분위기가 어둡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이기에 내가 저런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머리는 이상해서 저렇게 연결이 또 되게 되고 그러면 나는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남편은 아이의 옷은 가을옷과 겨울옷으로 싸라고 한번 더 알려 줬고, 비타민과 각종 어린이 약을 엄청나게 챙겨 줬다. 바르는 약, 먹는 약, 붙이는 약 등 각종 어린이 약들. 남편은 누가 약국집 의사 아들 아니랄까 봐 약들을 꼼꼼히도 챙겼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 남편은 정말 진짜 텔레비전에 나올 법한 진짜 좋은 남편이다. 참고로 나는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 만난 지 3개월도 안되어 결혼을 했다. 결혼 한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해볼 참이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뉴질랜드에서 잠을 자보고 깨달았다. 

"아. 뭔가 잘못되었구나". 패딩도 필요하고 난로도 필요하고, 전기담요도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흐린 날씨를 뚫고 천천히 운전해서 마트로 향했다. 반대쪽 운전과 회전 교차로 운전은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마침 필요한 겨울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마트로 가던 때는 덜 추웠다. 그래서 양말을 신기려는 엄마와 안 신으려는 딸의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승리한 딸은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뒷짐을 지고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난로, 전기담요, 이름은 잘 모르지만 집에서 입는 긴 외투? 같은 것을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미노에서 포테이토 피자와 하와이언 피자를 샀다. 히터와 전기난로와 전기담요까지 사용하자 집안 공기가 확실히 따뜻해졌다. 하지만 차가운 나무 바닥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임시방편으로 무릎담요 같은 것을 깔고 생활했다. 

확실한 건 밤이 되니까 정말 세상이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의 집은 도심 한복판 47층이어서 지나가는 구급차 소리, 폭주족 소리 등 온갖 잡음이 들려온다. 하지만 여기는 완벽한 어둠만이 존재했다. 나의 달팽이관이 도심 속 소음 공해에 혹사 당하고 있었나보다. 이상하게 뉴질랜드에 살면서 부터 어둠속 고요함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딸은 종종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호피무늬 옷을 입은 채 소파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나의 딸은 따뜻한 저 옷을 좋아한다. 실제로 입으면 융담요를 두른 것 같은 포근함이 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해 지내는 건 처음이다. 호텔은 하우스 키핑과 룸서비스가 있지만 에어비앤비는 없다. 그래도 호텔에서는 느낄 수없는 안락함이 있다. 청소와 밥을 해야하는 고단함도 있다. 하지만 나의 딸이 좋아하는 사리곰탕 라면을 언제든 끓여 줄 수 있으니 만족한다. 레몬 나무와 마당이 있는 것도 말이다.

뉴질랜드의 쓰레기 분리 수거는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일반 쓰레기, 종이, 우유팩, 생수통, 플라스틱, 스티로폼, 캔, 유리, 음식물쓰레기, 형광등, 건전지 따로 분리 배출한다. 뉴질랜드는 심플하게 음식물 쓰레기(씽크대에 음식물 분쇄기가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쓰레기, 유리, 재활용품 세가지로 나뉜다. 한국 엄마들은 좋아 할 듯하다. 

간단하다 각 가정에 색깔로 구분하는 쓰레기 통이 있다. 빨간색은 일반 쓰레기, 노란색은 재활용품(종이, 플라스틱, 페트병 등 재활용 전체를 넣어 버린다), 초록색은 가드닝 하고 나오는 식물 쓰레기, 파란색 바구니는 유리병을 버리도록 나눠져 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짜는 지역마다 다른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은 매주 화요일 쓰레기차가 격주로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월요일 저녁에 빨간색 쓰레기통을 집 앞에 꺼내 놓으면 화요일에 수거를 해 간다. 비웠다는 의미로 쓰레기통 덮개가 열려져 있다. 그러면 다시 덮개를 덮어 놓아 두는 장소에 끌고 가서 놓으면 끝이다. 그러면 그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는 노란색 쓰레기통을 꺼내 놓으면 된다. 우리의 숙소는 실내에 작은 쓰레기통은 있지만 재활용을 버리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낮에 구매했던 제품들의 포장 박스를 정리하러 마당으로 함께 나왔다. 함께 쓰레기도 정리하고 밤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쓰레기 정리를 하는데도 신이난 나의 딸. 한국에서는 그렇게 재활용 버리러 함께 가자 해도 심드렁 하더니. 환경이 달라지니 쓰레기 버리는 것도 신나는 일인가 보다.  

나의 딸에게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은 어떻게 기억될까?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누구나 탄생과 성장, 죽음을 경험한다. 일생 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된다. 나의 딸은 앞으로 자신이 답을 찾아야만 하는 때가 생긴다면, 앞으로 함께할 모든 여행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안에서 답을 찾기를 기도해 본다. 모든 것의 답은 나의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딸의 검은 눈동자의 그것과 닮아 있다. 반짝이는 빛.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나에게도 있다. 남편과 나의 딸. 이들과 영원히 다이아몬드의 변치 않는 것처럼 영원한 행복을 기도하는 밤이었다.

지금 이곳에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위해!

사랑하는 남편과 소중한 딸을 위해!

엄마는 강해져야만 하고 건강해져야만 하고 영어로 말해야만 한다!

영어! 새로운 복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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