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들이 모두 흩어지고 마당에 홀로 남아 우두커니 서 있는 이성에게로 교방 관리가 다가왔다.
“이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오, 많은 도움이 되었소이다. 이곳에서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은 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망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성의 눈치를 살피던 관리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정상적인 절차 없이 기녀를 빼돌렸다면 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교방의 관리가 잠시 말을 멈추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성을 바라보았다. 이성이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보일 듯 말 듯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교방에 이름을 올리면 금방 들통이 날 테니 말입니다. 최악의 경우 민가의 기생방으로 보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곳은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도 힘든 곳입니다. 다행히 교방으로 들어갔다면 이름을 바꿨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생들은 거의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예명을 사용하는데 그 예명이라는 걸 수시로 바꾸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수양이란 기녀는 바깥으로 드러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을 터이니…….”
“그렇군요. 고맙소이다.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소이다.”
‘이름을 바꿨을 수도 있다. 민가의 기생방이라…….’ 이성이 관리가 한 말을 속으로 돼 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소문을 해야 할지 점점 막막해졌다. 찾을 수 없더라도 어딘가에서 무사히 살아 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슬픔처럼 차올랐다.
객사에서 서리와 수행원들을 만난 이성은 지체 없이 한양으로 향했다. 한양을 향하는 이성의 마음에 수양을 만난 세월이 한낮의 꿈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생의 몸으로는 수양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과 신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도 쉬지 않았건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렸다니, 내가 너에게 가고, 네가 내게로 오는 길이 이토록 험난할 줄 누군들 알았겠느냐.’
아버지 성안의가 순천 목사로 부임받아 남원을 떠나던 그날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수양도 이성도 알지 못했다.
동헌의 뜰, 웅삼이 다급하게 이성을 찾았다. 이성은 사랑채에서 중용을 펼쳐놓고 중화(中和) 부분을 읊고 있었다.
“도련님, 부사께서 안채로 들어오라십니다.”
“알겠다. 그런데 너는 왜 그리 허둥지둥이냐?”
웅삼이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고 이성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오늘 좀 이상하구나!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말을 다 아끼고. 별일이구나!”
이성이 사랑을 나와 안채로 들어갔다. 성안의와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이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를 찾으셨는지요.”
“그래 경전은 잘 읽고 있느냐?”
성안의가 물었다.
“네, 부지런히 익히고 있습니다.”
“그래, 너도 곧 한양으로 입성해야지. 그건 그렇고 순천에 거처가 마련되었느니라.”
“네? 벌써요?”
“그럼 얼마나 오래 걸릴 줄 알았느냐? 짐이 정리되는 대로 출발할 것이니, 너도 그렇게 알고 있거라. 너야 글공부나 하면 되는 일이니 따로 신경 쓸 것은 없느니라.”
“네……. 알겠습니다.”
“표정이 왜 그러냐.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게냐?”
“아, 아닙니다.”
“빠르면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것 같구나.”
“내일요?”
“허허 이 녀석 뭘 그리 놀라느냐? 짐이라고 해봐야 별 게 있느냐? 단출한 짐이라 정리할 것도 별로 없으니 바로 떠나면 되느니라.”
이성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버지 성안의가 목사로 부임받고 순천에 가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날지는 몰랐던 것이다. 수양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어 순천으로 가게 될 거란 소식을 전하지도 못했는데, 내일 당장 이곳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니 이성의 마음이 급했다. 안채를 나온 이성이 급히 웅삼을 찾았다.
“웅삼아, 웅삼아!”
“네, 도련님!”
웅삼이 사랑채로 뛰어왔다.
“지금 교방으로 가서 수양에게 전해라. 내 오늘 밤 교방으로 갈 것이라고.”
“네, 알겠습니다요.”
웅삼이 급히 뛰어나갔다. 잠시 후 이성의 어머니가 사랑채로 들어왔다.
“어머님, 어쩐 일로…….”
이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 자리를 내주었다. 어머니가 중용이 펼쳐진 교자상 앞으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이성아, 딴생각일랑 하지 말고, 이참에 남원에서 있었던 일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야 하느니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성이 당황하여 물었다.
“너는 진정 이 어미가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이 녀석이 그래도 시치미를 떼는구나! 수양이라는 기녀를 만나고 다닌다는 걸 다 알고 있었느니라. 이곳이 얼마나 좁은 바닥인데 내가 모를 수가 있겠느냐. 아버님도 다 알고 계시느니라. 아버님께서는 그러다 말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이성이 황망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한심한 듯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웅삼이는 교방으로 달려갔느냐. 오늘 밤 교방에 갈 생각일랑 접어두거라. 너는 나와 함께 그간 신세 졌던 스승과 어른들께 인사드릴 것이니. 너는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야.”
“어머님, 그래도…….”
“이 녀석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내 그간 있었던 일은 더는 탓하지 않을 테다.”
어머니는 이성의 다음 말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방을 나갔다. 이성의 어머니는 사랑방으로 오기 전에 동헌을 나서는 웅삼을 붙잡아 두었다. 웅삼이 붙잡힌 것도 모른 채 이성은 방안을 서성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