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후금을 예의주시하며 정세를 살피고 있었다. 점점 힘을 키우고 있는 후금이 명나라를 침략하기 전에 조선을 먼저 집어삼키려고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후금을 잘 다독이면서 조선이 스스로 힘을 기르는 계책이 필요하다며 신하들을 설득했지만, 이런 임금의 생각에 따르며 착실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충신이 없음에 통탄했다. 양국의 눈치를 보며 중립의 위치를 지키던 중 후금이 명나라의 무순성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명나라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조선으로 국서를 보내 구원병을 요구했다. 임금은 섣불리 조선의 백성들을 강적과 맞서게 할 수 없어, 군대 파견을 미루고 있었다.
“지금 누루하치가 이끄는 병사들은 철저하게 훈련된 군사들이오.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병사들이 그들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농사를 짓는 조선의 병사들을 보내 명나라를 돕게 하는 것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임금이 근정전에 대신들을 모아 놓고 어좌에 앉아 말했다.
“하오나, 명나라와 조선은 군신 관계이면서 부자 사이와 같사옵니다. 명나라에서도 우리 조선으로 병사를 보내 함께 싸워주지 않았습니까. 명나라가 위기에 처한 지금이 바로 그 은혜를 갚을 기회입니다.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선봉에 서야 할 것입니다.”
임금의 의중에도 대신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결국 지속적인 명의 요구와 신하들의 반발로 군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국왕 직속의 통역관 출신 강홍립을 1만 구원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강홍립을 몰래 불러 비밀 지시를 내렸다.
“그대는 명나라 장수의 명령을 따르지 말고 정세를 살펴 신중하게 처신하라. 만약 후금의 힘이 더 세다면 항복한 후, 후일 조선을 침략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파병이 명나라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려야 한다.”
“전하, 신 어명을 받들어 병사들의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키지 않고 후금의 조선 침략을 막겠나이다.”
임금의 예상대로 조·명 연합군은 후금을 당해낼 수 없었고, 강홍립이 임금의 밀명에 따라 후금군에 투항했다.
성균관의 서재에서 유생들이 모여 조선 병사들을 이끌고 참전한 강홍립이 후금에 항복한 것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후금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명나라의 눈치를 봐야 하겠나. 이제 명나라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고 그 와중에 농민들의 민란이 끊이질 않으니 앞날이 불 보듯 뻔한지 않은가. 만약 강홍립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병사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걸세.”
평소 차분히 학문에만 전념하던 박남일이 말했다. 이성과 마찬가지로 나라 정세가 어지러워 한 발짝 물러나 관망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성균관 내에서도 이념적 대립과 함께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생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병사를 보내 왜와 싸우지 않았나. 그간 명과의 의리를 생각한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맞서 싸워야지.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항복하다니, 명에서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차익돈이 눈살을 찌푸리며 박남일의 말을 반박했다. 그는 유생들이 모여 논쟁을 벌이는 곳에서 빠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었다. 평소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고 한번 내세운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성정 때문에 기피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유생들은 특히 그의 전투적인 작태에 피로를 느끼곤 했다.
“그런 명분이 어떻게 병사들의 목숨보다 중하다고 할 수 있겠나. 후금 쪽으로 힘이 기운 싸움이란 걸 뻔히 알면서 병사를 보낸 것부터가 무리였네. 이미 우리 병사들의 희생도 상당했던 상황이지 않았는가.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찌 조선 병사들의 죽음을 모른 척할 수 있었겠나. 임금의 밀명이 없었다면 강홍립 장군까지 모두 몰살했을 걸세.”
몸을 사리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김헌이 나섰다.
“후금이 제아무리 세력이 강해진다고 한들 명나라와 조선의 문명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미개한 민족임을 모르는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기른 전투력, 그게 얼마나 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강홍립 장군이 살아 돌아온 것은 불명예라네. 조정에서 지금 그를 처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
한기태의 말에 좌중이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한기태가 무리들과 함께 서재로 들어왔다. 김헌이 멈칫하며 한기태를 바라봤다. 한기태가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유생들을 가로 질러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이건 분명 명나라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성리학의 질서를 위배한 일이지. 사대의 나라에 대한 배신 행위란 말일세. 임금은 이미 명분을 상실했네. 그런 군을 우리가 어찌 섬길 수 있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임금을 지지하던 자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시기 임금의 정치를 옹호하던 김자점이 명에 대한 사대를 중시하던 신하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힘이 쏠리는 시류를 타고 등을 돌렸다. 한기태는 당시 지평을 지내고 있던 김자점과 은밀히 접촉하며 궁궐 소식을 접하면서 권력의 흐름을 주시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궐 내에서는 명나라를 섬기던 신하들이 강홍립이 의리를 저버렸다고 비난하며 그의 가족을 잡아다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금은 강홍립을 옹호하며 중립적인 외교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이 계속되었지만, 임금은 이를 적절히 거절하며 후금과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정권에서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신하들이 다시 권력을 잡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한기태는 틈만 나면 동재와 서재를 오가며 새로운 임금을 맞이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하고 다녔다. 유생들 사이에서 임금의 퇴진과 새로운 군주 추대에 대한 논의가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던 시기였다.
결국 이귀, 김자점, 심기원, 이괄 등이 무력으로 반란을 일으켜 임금을 내쫓고 능양군을 왕의 자리에 앉혔다. 이들은 군사 2000여 명을 이끌고 창의문을 돌파하고 창덕궁을 향했다. 임금은 반군이 대궐에 들어간 뒤에야 피신했다. 반정에 공을 세운 33명은 세 등급으로 나누어져 공신의 훈호를 받고 각기 벼슬을 얻었다.
반정이 성공한 후 성균관에서는 임금을 지지하던 유생들을 탄압하고 반정에 협력했던 유생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다. 거사에 협조한 유생들은 승진하거나 학문의 길에서 혜택을 받았지만, 기존 임금을 옹호했던 일부 유생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성균관에서 쫓겨나는 일도 발생했다. 김헌과 박남일도 한기태의 눈 밖에 나면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거나 상소를 통해 입장을 표명한 유생들은 성균관에서 퇴출되거나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김헌과 박남일은 적극적인 정치적인 표명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성균관 내에서 반정 세력의 견제를 받으며 각종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한편 한기태와 차익돈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높아져 반정 세력의 대사성과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한기태의 무리는 이전보다 덩치를 키우며 성균관 내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군림했다.
“이런 난세에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나는 잠시 낙향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네.”
동재의 마당 정자에 박남일과 이성 김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남일이 말했다.
“자네 같은 유생들이 모두 떠나면 이곳은 그야말로 한기태의 세상이 되고 말 걸세.”
이성이 말했다.
“자네는 끝까지 남아 성균관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는데 힘써주게. 나는 이미 반정 세력들의 눈 밖에 나서 팔다리가 모두 잘린 형국일세. 이곳에 남아 있다 한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또 무슨 빌미를 들어 흠을 잡으려 할 게 분명하네. 이성 자네처럼 후일을 도모해야 했는데, 내가 경솔했지…….”
“경솔하다니, 내가 비겁했던 거지. 당시엔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한들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네. 그래도 자네들은 실세에 따라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을뿐더러 옳고 그름에 대한 사리로서 목소리를 낸 것뿐이지 않았는가.”
“그래, 이성의 말이 옳아. 낙향은 안 될 말일세. 그건 자네답지 않아. 나는 끝까지 버틸 생각이네. 나같이 눈치를 살피는 사람도 견디고 있는 마당에 자네같이 견고한 사람이 무슨 말인가.”
김헌도 박남일을 만류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