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이 유배지인 남해로 귀양 가고 이듬해 정월 반정 공신 중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이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정 후 집권당의 인사들은 또 다른 반란을 걱정하며 심기가 곤두서 있었다. 이에 문희, 이후, 권진, 정방열 등의 문인들이 이괄과 친한 반대파 세력인 한명련, 정춘신, 기자헌, 이시언 등을 엮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상소를 올렸다. 이에 임금이 이들을 추국하라 명했는데 추국관들은 조사 끝에 무고라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집권당의 인사들이 더욱 단합하여 이괄을 직접 소환하여 조사하자고 하지만 임금이 이를 계속 거부했다. 이에 집권당의 우두머리인 이귀가 나서게 되었다.
“전하, 이괄이 몰래 다른 뜻을 품고 강한 군사를 손에 쥐었으니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뒤에는 반드시 제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역적들의 흉모가 드러났으니 그를 잡아 국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귀가 말했다.
“이괄은 충의로운 사람인데 어찌 역심을 품었겠는가. 이것은 흉악한 무리가 그의 위세를 빌리고자 한 말이다. 사람들이 경이 역모를 꽤했다고 고한다면 나는 이를 믿지 않을 것이다. 이괄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임금은 이귀를 비롯한 집권당 인사들의 강한 요구 때문에 결국 타협안을 내놓았다.
“전방의 병력들을 지휘하고 있는 이괄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정말로 역심을 품고 도성으로 밀고 들어올지 모른다. 허나 신들의 의향이 정 그렇다면 이괄의 아들과 부하인 순변사 한명련을 소환하여 국문하도록 하라.”
결국 이괄이 가장 믿고 신임하는 신하인 한명련은 체포되어 압송당하고 아들 이전 역시 도성으로 압송되었다. 이괄은 역모의 죄를 물어 결국 자신까지 제거될 것임을 직감했고, 무능하고 간사한 공신들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하였다. 이후 그의 예상대로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의금부 도사와 선전관 들이 들이닥쳤다. 이괄은 그들을 모두 죽인 뒤 그의 부대와 한명련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이괄 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금은 궁을 버리고 도성을 떠났다. 이괄이 군사를 일으킨 지 19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선조의 서자 흥안군을 왕으로 옹립하면서 새 정권을 수립했다.
“전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지금 세자를 세우는 것이 어떨는지요.”
신하들이 임금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뭣이라! 원자가 이제 12살이고 짐이 아직 이렇게 정정한데 뭔 헛소리들을 하는 것인가!”
임금이 인상을 찌푸리며 역정을 냈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탓에 용안이 창백하고 호흡이 불안정했다. 움푹 파인 눈으로 신하들을 노려보는 임금의 용안이 용렬하기 그지없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군사의 호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피란을 다니느라 임금의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호위군이 겨우 이 정도라니! 경들은 지역의 군사들을 모으고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인가. ”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지만 겨우 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군과 신하의 호위를 받으며 피란하는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임금의 짜증은 나날이 심해졌다.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점점 임금의 머릿속은 제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도망간 신하들에 대한 분노로 채워졌다. 하지만 임금의 피란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유생들이 있어 콩죽으로나마 끼니를 때울 수는 있었다.
한편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이괄의 군대는 안령에서 도원수 장만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참패하고, 이천 묵방리로 퇴각했다. 천안에서 반란군의 평정 소식을 접하였으나 패주하는 반란군이 이천 쪽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공주로 피란을 갔다. 이때 이성의 아버지 성안의가 임금을 공주로 호송했다. 성이성이 아버지와 함께 임금의 호송을 도왔다.
“전하, 평지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혹여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지 모르니 산길을 택해야 할 듯합니다.”
성안의가 임금의 용안을 살피며 말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 그리 하라.”
성안의의 말에 임금의 분노가 다소 누그러졌다. 반정 후 가까이에 믿을만한 신하가 없다고 여긴 임금은 덕망 있고 명철한 신하를 발굴해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그중 한 명이 성안의였다.
“예, 전하 길이 많이 험할 것입니다. 몸에 무리가 되시겠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보호 장구를 좀 더 보강해서 착용하시옵소서.”
성안의 특유의 선한 말투와 표정에 믿음이 갔다. 임금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장구를 받아 걸쳤다. 보호장구를 모두 걸치자 임금의 몸이 휘청였다. 성안의가 임금의 몸을 감싸듯 받쳐주었다. 임금을 호위하며 군사와 신하들까지 이끌고 들어간 겨울 산은 그야말로 위험천만이었다. 경사지고 언 땅을 밟다 보니 낙상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한 치 앞밖에 밝히지 못하는 횃불로는 지형을 한눈에 볼 수도 없었다. 성이성이 먼저 앞서 지형을 파악하고 사람들을 안내했다. 밤새 산을 넘어 평지에 이르자 멀리 민가가 보였다. 한 민가로 들어가 성안의와 성이성이 임금의 호송상황을 알리고 취식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취식을 돕기 위해 민가의 아낙들이 아궁이에 불을 짚이고 임금이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었다.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집주인이 성안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런 난리에 집을 내어주어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으리다.”
성안의가 예의를 갖춰 공손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 엄동설한에 임금님을 직접 모시고 고생하시는 나으리의 노고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집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잠시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눕힐 수 있었던 임금이 얼었던 몸이 풀리자 성안의를 불렀다.
“이번 공주행은 자네 공이 크네. 그대의 공을 내 잊지 않겠네.”
“아닙니다. 전하. 신하 된 자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충분한 옷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피란 길에 용체가 상하실까 염려되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한결 피로가 풀리는 듯하이. 그런데 자네 아들이 성균관 유생이라고 했나?”
“네, 전하.”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이 그른 말이 아닌 듯하네. 공부만 하느라 경험이 없을 텐데도 자네를 돕는 모습이 남달리 능숙하고 듬직하군. 자네 뒤를 이을 재목이구먼.”
“과찬의 말씀입니다.”
성이성이 평소 모습답게 아들 성이성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성이성이 호위 군사에게 지시를 내려가는 길을 미리 점검하게 한 뒤 목적지인 공주로 향했다.
한편 이괄은 진압군의 부장이던 이수백, 기익헌 등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시신을 능지처참하여 육신을 전국 팔도로 보내고 그의 목은 임금이 머물고 있는 공주로 보내졌다. 그해 2월에 난리가 평정되고 임금이 궁으로 돌아오자 성안의는 호송의 공로로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성이성도 성균관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