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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30. 2024

일상 속 소시오패스

  은솔이 상급반으로 들어온 후 하루하루가 살얼음이다. 양아는 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꾹꾹 누르고 있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늘 말하고 싶지만 말해선 안 될 금기를 혀끝에 매달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은솔이 양아와 라이벌 관계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늘 은솔 쪽에서 양아를 견제 대상으로 여겼을 뿐. 이상하리 만치 양아에게 꽂혀서는 양아가 주목받는 모든 것을 질투하던 아이다. 막상 상급반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보니, 헬리콥터 맘이었던 은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은솔만큼이나 질투심이 많아 보였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학부모 위원으로 활동하며 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은솔이 상급반에 추가 모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그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상급반에 소속되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 휴대전화 너머에서 은솔을 부르던 앙칼진 목소리를 기억한다. 너와 통화한 뒤로 학교에서 마주치면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버리던 모습도 선연히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엄마와 딸이 하는 짓이 똑같을까 그저 신기했다. 늘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마치 아줌마 부대처럼 자기편을 만들어 끌고 다녔다. 적어도 어른들의 세계에선 그런 모습이 더 초라해 보였다.


  상급반을 빠져나간 아이들의 자리가 다시 채워지고 단원 평가와 월말 평가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중간고사가 가까워졌다. 양아는 그간 내신 관리할 시간이 통 없었다.


  중간고사 준비는 잘하고 있니?


  맨날 집에 오면 12신데, 언제 시험 준비해.


  상급반에서 시험 대비는 안 해줘?


  그런 거 없어. 자율학습 시간에 혼자 해야 해.


  모르는 거 물어볼 수는 있어?


  자습 감독 선생님밖에 없으니까, 그것도 쉽지는 않아.


  그러면 상급반 과정 밟고 있는 애들은 내신 관리가 쉽지 않겠구나.


  집에서 밤새는 애들이 많아. 학교 오면 다들 전멸이야. 수업 시간에 엎어진 애들은 전부 상급반 애들이라고.

 

  흠, 큰일이구나. 주말에라도 보충을 좀 하던가 해야겠구나. 모르는 거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안 되면 인터넷 강의라도 들어보던가.


  알겠어.

 

  근데, 은솔이는……


  은솔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양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너를 응시한다.


  너 괴롭히고 그러지 않아?


  쳇, 그 새끼는 애들 사이에 어떻게 해서든 끼어 보려고 지금 엄청 착한 척하면서 아부하느라 바빠. 정말 어이가 없는 건, 나한테 아는 척하면서 말을 거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니?


  몰라, 짜증 나.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지가 나한테 말을 걸 수가 있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주 착한 아이라도 된 것처럼 연극하면서……. 역겨워.


  양아는 억지로 누르고 있던 고통이 다시 도진 것처럼 은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해한다.


  너한테 먼저 말 걸었니?


  그래, 아주 태연하게 그랬단 말이야. 그게 더 화나.


  혹시 은솔이가 너랑 화해하고 싶은 건 아닐까?


  엄마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해! 화해하려면 사과부터 해야지. 그리고 나는 걔랑 화해할 생각도 없어. 잘못을 저질러 놓고, 사과만 하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걔는 같은 반이 아닐 때조차 무리를 지어서 내 얘기를 하고 다녔던 애야. 너무 끔찍하단 말이야. 여기서도 벌써 애들이랑 친해져서 몰려다니기 시작했단 말이야.


  같은 인간인데도 어쩜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싶다. 어디를 가든 무리부터 짓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재주도 남다르다.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어디서 혹독하게 훈련이라도 받은 것 같다. 겉으로 보면 무척 사회성이 뛰어나 보인다. 문제는 사회적 관계를 이용해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자신이 속한 무리가 힘이 되고 그 힘으로 눈에 거슬리는 아이들을 소외시킨다. 왜 아이들은 그런 무리 속에 꼭 그렇게 소속되려고 할까.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근무지인 고등학교에서도 부쩍 눈여겨보게 되는 게 있다.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혼자 다니는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펴보게 된다. 양아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부모의 마음은 근무지인 학교와 분리되지 않는다. 비록 딸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런 고통을 알고 있음으로 인해 그런 아이들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교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응, 울 아들 시험은 잘 쳤니? 점심은? 웅 그랬쪄. 그래 엄마가 주문해서 집으로 보낼게.


  옆자리에 앉은 윤리 선생이 비음을 잔뜩 섞어가며 아들과 통화한다. 듣고 싶지 않지만 옆자리에 앉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공유하게 되는 사생활이 있다. 통화를 끝내고는 약속한 음식을 주문하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울 둘째 아들, 오늘 시험 치고 배고프다고 전화가 와서……, 지가 시켜 먹어도 되는데, 귀찮으니까 엄마한테 해달라고 그러네요.


  직장에 앉아서도 챙겨줄 수도 있으니 그게 어디예요. 시험은 잘 쳤다고 하던가요?


  모르겠어요. 잘 쳤다는 건지 못 쳤다는 건지. 어제는 저도 같이 잠 안 자고 옆에 앉아서 시험 출제했어요. 머리도 멍하고, 졸려 죽겠네요.


  윤리 선생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다.


  현대판 한석봉 어머니네요. 지극정성입니다.


  아들 공부를 위해서라면 뭘 못하겠어요. 지가 한다고만 하면 달러 빚을 내서라도 뒷바라지할 판인데. 둘째라도 공부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어릴 때부터 형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운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알아서 하는 편이에요. 쌤 딸도 시험 기간 아니에요?


  네, 중간고사 기간이죠. 며칠 뒤에 시험 쳐야 해요.


  일전에 고급반인지 상급반인지 들어갔다고 안 했나요?


  네.


  어때요?


  잘 모르겠어요. 보고 있으면 위태로워요. 생각보다 빡세요. 꼭 전근대적인 시대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단원 평가에 월말 평가, 꼭 우리 학교 다닐 때 같아서……. 우리 때는 시험 결과를 공개하고 그런 무식한 짓을 안 했는데, 더 한 것 같아요.


  중3인데 애들을 엄청 잡나 보죠?


  사립 중학교다 보니 실적에 열을 올리는 거죠. 애들 수치심 따윈 안중에도 없고 철저하게 성과주의예요


  중3이면 좀 빠르긴 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 삼 년 동안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데, 미리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학원도 상급반 들어가려면 시험 쳐서 들어가는데  싶은 생각도 들어요 . 울 아들도 학원 시험 친다고 긴장하고 그랬으니까요.


  보면 볼수록 이게 아니다 싶어서 나오라고 하고 싶긴 한데 문제가 좀 생겼어요.


  무슨 문제요?


  우리 애랑 예전부터 악연인 애가 있는데 걔가 상급반으로 뒤늦게 들어와 버린 거예요. 지금 나가면 이상하게 양아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지는 것 같고……. 오기로라도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일전에 얘기했던 그 애 말인 거죠. 쌤 딸 따돌리고 괴롭혔다던.


  정말 어쩜 이렇게 끈질기게 만나게 될까요.


  이사 가지 않는 이상은 계속 엮일 수밖에 없죠. 가해자를 떠나게 하려면 학폭위 열고 끝장을 봐야 하는데, 그게 어디 할 짓인가요. 전쟁이지. 학폭위 열고 하면서 애들은 애들대로 망가지고 절대로 이전으로 못 돌아가더라고요.


  그러니까요. 늘 우리 애만 참고 피하고, 이젠 정말 지겨워요. 언제까지 피하기만 해야 할까 싶고, 너무 속상해요.


  쌤, 정말 고민되겠네요. 우리도 이렇게 수업하다 보면 아이들 관계가 훤히 보이잖아요. 무리의 중심에 소시오패스들이 똬리를 틀고 꽉 쥐고 있는 놈들이 있죠. 선생들은 다 보인다는 걸 자기들만 모르는 거죠.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데 말이죠. 3학년에 미진이라고, 쌤도 수업하시잖아요.


  미진이 갠 처음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성적이 높게 나와서 그때부터 눈에 띄었어요. 애들한테 함부로 하는 것 같은데 친구가 많은 게 이상하긴 했어요.


  걔가 쌤 실세예요. 눈에 안 띄게 여자애들 남자애들까지 잡고 있더라고요. 쌤은 작년에 오셨으니 모르겠지만 걔 처음 입학했을 때 장난 아니었어요. 선생들이 제일 꼴 보기 싫은 애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1학년 때 담임이 고생 좀 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수업 시간에 잘 듣다가도 자기가 듣기 싫어지면 옆에 있는 친구 건드리는 나쁜 버릇이 있더라고요. 주의 주면 엎어져서 대놓고 잠자고. 반항적이다 싶었죠. 신기하네요. 그런 애가 어떻게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애들 세계는 그게 이상한 거죠.


  그래도 아이들이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좀 나은 것 같아요. 성인 수준의 판단력이 생긴다고 하잖아요. 사실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지만요. 중학생들은 좀 더 맹목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같아요. 주체적인 판단력이 더 없는 거죠.


  저도 고등학교만 돌다 보니 중학교는 잘알못이요. 중학교로 가면 적응 못 할 것 같아요. 잡무도 엄청 많고, 뭔가 정신 사나울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중학교 여학생들이 제일 피곤할 것 같아요. 사람을 괴롭혀도 그 방식이 교묘해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 제일 증명하기 어려운 거잖아요. 따돌림도 어떤 선생들은 같이 놀기 싫어서 그런 건데 억지로 놀게 할 수 있느냐 이렇게 말한다니까요. 피상적으로 보면 그렇죠. 취향 존중이니 이런 언어를 쓰는 선생도 있더군요. 자기 자식이 직접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임 이란 사람 중에 민감성이 떨어지는 선생이 있었거든요. 자기 자식이 당하는 데도 취향 존중이란 말이 나오는지 보고 싶어 지더라고요.


  티 안 나게 괴롭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야유, 비꼬는 말투, 은따, 무시하는 시선 이런 게 사람 피를 말리는 건데, 어깨빵해 놓고 바로 사과하고 그러잖아요. 통증이 밀려오고 화는 나는데 일방적으로 사과는 던져 놓고 가버리는 식으로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것도 타고나는 것 같아요. 쌤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하라고 해도 못 해요. 우리 딸도 그건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아무리 당해도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아 답답하다 정말. 순둥이들은 정말 계속 당하기만 하네요. 그런 순댕이들은 학교에서 지켜줘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주위가 어떻든 휩쓸리지 말라는 말밖에 해 줄 게 없는 거예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양아가 좀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지게 되는 거죠. 그나마 제가 안심할 수 있는 건 우리 애는 가해자에 동조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무리에 들어가느니 혼자 있는 걸 택한다는 거예요. 어쩌면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에도 있긴 있었다. 중학생들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학생들 사이에 권력관계는 완고하다. 윤리 선생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후로 미진의 행동을 눈여겨보게 된다. 마치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주시하고 있어서 인지 미진의 행동들이 도드라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과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만을 가득 품은 것 같은 인상이 거슬리기도 한다. 늘 같이 다니는 인경이도 같이 모니터링의 대상이 된다. 닥터 피시 마냥 미진에게 붙어 있다. 눈치를 엄청 본다. 어떨 땐 몸종 같다. 미진은 자율학습 시간에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노닥거리기도 한다. 그럴 땐 엄청 밝은 모습이다. 미진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인경이가 미진의 자리를 차지한다. 미진이 들어오기 전 알아서 자리를 비워두는 걸 보면 계속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인경은 혼자 있으면 착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이미지다. 하지만 미진과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이인자처럼 행동한다. 간사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며칠 사이 미진을 둘러싼 관계망이 모두 파악된다. 학교 인근으로 환경 정화 활동을 나가서도 무리를 이루고 다닌다. 선생들의 눈이 의식되는지 피해 다니는 눈치다. 일부러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그간 인식하지 못한 모습이다. 미진 무리의 모습이 점점 더 자주 눈에 띈다.

  3학년 부장 선생님 부탁으로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맡은 날이다. 일정에 없던 야근을 하려고 하니 피로감이 몰려든다.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공강실로 모여들고 있다. 출석부를 들고 교실로 들어섰을 때 종이 울린다. 조금 늦은 아이들이 서둘러 자리에 앉는다. 자율학습이 시작되고 10분 뒤 출석 확인을 끝내고도 오지 않은 8명의 학생이 있다. 미진의 무리다. 여자 셋, 남자 다섯. 자율 학습 감독은 그냥 앉았다가 나오면 끝나는 일인데, 예감이 좋지 않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해진 공강실의 적막을 깨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들어온다. 미진이가 교탁이 있는 앞자리까지 걸어오고 있다. 자기들이 늦은 이유에 대해 미진이가 대표로 말할 모양이다. 너는 미진이가 교탁 앞으로 올 때까지 모른 척한다.


  선생님, 저희 공동 과제 하다가 늦었어요. 아직 다 끝내지 못해서 다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들어왔는데, 다시 나간다고? 여덟 명 모두?


  네.


  지금 몇 시야?


  저희도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어요.


  여덟 명이 같이 있었는데, 단 한 명도 자율학습 시간을 체크하지 않았다?


  거짓말 아니고, 쌤.


  미진이는 무사히 넘어갈 거라고 확신한 얼굴로 왔다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본 사람처럼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넌 선생님이 허수아비로 보이니? 먼저 허락을 받고 과제를 하던가 했어야지. 이제 20분 후면 자율학습이 끝나는데 지금 들어와서 다시 나가겠다고?


  진짜, 시계를 못 봤어요.


  선생님 허락 없이도 30분이나 늦게 들어와 놓고선 지금 와서 무슨 허락을 받겠다고. 그렇게 떼로 몰려다니면 무서울 게 없어? 너희 여덟 명은 오늘 자율학습 참여 안 한 걸로 담임께 보고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미진이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뭐라고 변명하려고 하는 걸 막는다.


  됐고, 다른 학생들한테 방해되니까 더는 말하지 마.


  미진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휙 소리가 나도록 뒤돌아선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요란스럽게 가방을 챙겨 공강실을 나가버린다. 너와 미진의 눈치를 보던 미진의 무리 중 여학생 두 명이 결국 미진을 따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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