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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y 07. 2024

바위가 되고 싶어

  양아는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학교로 갔다. 학교에 늦을까 봐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로 현관문을 밀고 나갔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 놓은 것처럼 다툼을 멈추고, 빈 껍데기인 채로 등교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양아가 와 있다.


  너 오늘 상급반 수업은 어쩌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안 간다고 말했잖아. 가고 싶지 않아.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니지. 선생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무단으로 나와도 되는 거야?


  선생님께는 몸이 안 좋다고 말씀드렸어.


  그럼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부터는 수업 듣도록 해.


  안 갈 거야.


  너 자꾸 그럴래?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했잖아!


  바보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아. 넌 자존심도 없어! 왜 맨날 네가 피해야 하냐고. 너도 좀 독해질 수는 없는 거야.


  그냥 다 싫단 말이야. 나 좀 내버려 둬 제발!


  맘대로 해 그럼. 꼴도 보기 싫으니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


  양아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다시 양아를 향해 쏟아부을 야유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다. 상급반을 나온다고 해도 양아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 보다 더 노골적으로 아이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게 될까 두렵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애한테 '꺼져버려'는 아니다.


  나도 부모 선택해서 태어난 거 아니니까!


  막상 뱉어놓고 저도 놀랐는지 너의 시선을 피한다. 양아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을 한 번 찔끔 감으며 남은 눈물을 마저 짜낸 양아는 그대로 돌아 현관문을 밀고 나가버린다.


  날이 어둑해지도록 양아가 들어오는 기척이 없다. 시간은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 시계 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해 보지만 신경증 환자처럼 시간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어둠이 마당을 지나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방 안으로 스며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아가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자고 있으면 좋겠다. 양아의 방문을 연다. 깨끗하게 치워진 방안이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다. ‘아이가 없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잘 정돈된 방이 견딜 수 없이 적막하다. 양아가 나간 이후 들어온 남편은 서재에 들어간 뒤 기척이 없다. 마음이 초조해진 너는 남편이 있는 서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연다. 그는 여전히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그냥 모니터만 보고 있다.


 여보, 날이 어두워졌는데, 나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찾으려면 혼자 찾아. 난 모르겠으니까.


 당신은 진짜…….


 그냥 내버려 둬. 좀 걷다가 들어오겠지.


 어두워졌는데 위험할까 봐 그러지. 아무것도 안 가져갔단 말이야. 휴대폰이랑 지갑도 방에 다 있어. 그냥 몸만 나간 거야.


  남편은 더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둑해진 마당으로 홀로 나와 시동을 건다.

  저녁이면 아이와 함께 걷곤 했던 공원에 차를 세운다. 개천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둘러본다. 밤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아직 걷고 있다. 농구를 하던 남학생들이 운동을 끝내고 무리를 지어 집으로 가고, 벤치에 앉은 중년의 사내가 누군가와 오래도록 통화를 하고 있다. 텅 빈 운동기구들을 지나 비둘기들이 잠들어 있는 다리 밑에 이른다. 양아는 개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을 걸을 때면 다리 밑에 기거하는 비둘기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둘기들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도 않고 먹이를 쪼아 먹느라 여념이 없다. 아무런 비애나 슬픔도 없이 태연히 교미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비둘기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아…….


  엄마, 나는 다시 태어나면 바위가 되고 싶어.


  비둘기가 있는 다리 밑을 지나면서 양아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왜 하필 바위야?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 바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바위가 되는 싶다는 말을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벼운 농담으로 여기며 지나왔던 말들이 교각 아래로 메아리친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3학년이 된 후로 양아와 밤 산책을 나온 적이 없다. 텅 빈 벤치와 산책로, 가로등이 꺼져버린 비둘기들의 서식처, 양아와 함께 걷던 거리의 풍경들이 깊어진 시간 속에 비어 있다.

  다시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양아가 갈 만한 곳으로 차를 돌린다. 불 꺼진 도서관을 지나 매운 떡볶이와 쿨피스를 함께 먹었던 분식집, 햄버거 가게가 있는 골목을 둘러본다. 2차선 도로로 나와 4차선, 8차선의 대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에도 양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던 길로 핸들을 돌려 대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들을 누비기 시작한다. 가게들이 문을 닫은 골목에 간간이 불을 밝힌 곳은 술집들뿐이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구분되지 않는 학생들이 술집 앞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미 취기가 오른 학생들은 담배를 피우는 내내 고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다가 욕설을 뱉어내기도 한다. 양아가 어디에 있든 지금 거리에서 마주하는 모습은 모두 저런 풍경일 것이다. 오토바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골목을 지나 대로로 폭주한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 마찰을 일으키며 급정거를 하는 소리가 텅 빈 도로를 타고 들려온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고라도 난 건지 사이렌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지나간다.

  문득 양아가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든다.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 보지만 불안은 더욱 커진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발신자를 확인한다. 남편의 전화다.


  양아는 찾았어?


  아직, 보이지 않아.


  남편의 전화를 받고 괜히 코끝이 찡하다.


  지금 어디쯤이야?


  학산빌딩 근처야.


  공원 주변 돌아볼 테니, 공중전화 부스 있는 데로 돌아봐. 다시 전화할게.


  공원은 둘러보고 오는 길이야. 여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애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좀 더 찾아보자.


  좀 전에 근처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아. 구급차도 지나가고…….


  어디로 갔는데!


  시청 방면으로…….


  양아에게 아무 일 없기만을 기도한다. 자동차 안의 전자시계가 자정을 지나고 있다. 양아와 너와 남편이 자정이 지나도록 거리를 헤매고 있는 이 모든 사태가 모두 네게서 비롯된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든다. 양아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시는 아이를 채근하거나 손을 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집을 나간 것에 대해서도 너를 헤매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함구하리라.

  눈물로 시야가 흐려지고 엑셀레이터에 더욱 힘을 준다.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턱밑으로 떨어져 가슴께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흐려진 시야로 검은 뭉치 하나가 훌쩍 뛰어든다. 순간 브레이크를 힘껏 밟는다. 관성을 이기지 못한 차가 미끄러진다. 그 사이 핸들을 꺾었는지 중앙선을 넘어 인도의 바리케이드 앞에 멈춰 선다. 그 사이 고양이는 건너편의 보도블록 위로 사뿐히 뛰어올라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진다. 고양이가 사라진 도로 위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고요하다.

  텅 빈 도로가 스크린이라도 된 것처럼 양아와 다투고 있는 너의 모습이 나타난다. '공부 때문에 그래? 이 바보야! 넌 왜 그렇게 약해 빠졌니.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해!' 있는 힘껏 따귀를 때리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 나가라고…….',  ‘나도 부모 선택해서 태어난 거 아니니까!’ 고요한 어둠 속에 양아의 격앙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양아는 여전히 너를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뛰쳐나간다.


  양아는 어쩌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기 방에서 잠을 자고 있을지 모른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차창을 열자 찬기운이 훅  들어온다. 너는 갑자기 정신이 들어온 사람처럼 집으로 차를 돌린다. 집으로 들어서자 온기가 느껴진다. 센서 등 불빛 아래로 양아의 슬리퍼가 놓여 있다. 슬리퍼를 보자 한참을 헤매다 들어온 양아를 보는 것 같다. '노크 안 하면 벌금 만 원!'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린다. 양아가 침대에 누워 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숨을 죽이고 있다. 얼마를 걸었는지 발바닥이 온통 물집투성이다. 아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뛰쳐나간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는 다툼을 멈추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저항해 온 것이다.


  양아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이 왔는데도 늦잠을 자고 있다. 너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아이를 깨운다.


  20분 뒤에 나가야 하니까. 준비하고 나와.


  대충 감은 머리에서 여전히 물이 떨어지고, 어깨와 목깃이 젖은 채로 식탁에 앉는다.


  양아, 선생님께는 내가 전화드릴 테니. 상급반 수업 이제 안 들어도 돼.


  양아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짓는다.


  나 정말 열심히 할게. 거기 안 가도, 거기서 공부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거야.


  넌 그 말은 꼭 지켜라.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갑자기 존댓말을 쓴다.


  양아, 오늘 아빠 차 타고 가자.


  양아는 오랜만에 신이 나서 가방을 챙겨 마당으로 서둘러 나간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던 남편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고생만 시키고…….


  그러게, 그게 뭐라고 정말. 애 종아리에 멍이 선명하더라.


  남편은 민망한 듯 아무 말 없이 서둘러 나간다. 멍 이야기를 꺼내고는 아차 싶다.


  양아가 상급반을 그만둔다고 학교로 전화하고 보니 오늘이 딱 100일째 되는 날이다. 마치 하루를 남겨두고 좌절하는 주인공처럼, 아무래도 양아는 신화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하루를 더 견뎠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양아, 학원을 다시 알아봐야 할 텐데?


  학원은 다니고 싶지 않아.


  그럼 과외해도 되고…….


  그게 나을 것 같아.


  그래 그럼 엄마가 영어, 수학 선생님 알아볼게. 학기 중간이라 선생님 구하기가 어떨지 모르겠다.


  양아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이상할 만큼. 학교 생활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만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말수도 부쩍 적어지고 표정도 없어졌다. 차라리 힘들다고 말할 때가 더 나았을 정도다. 책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집중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손상된 느낌이다. 그리고 양아의 다리에 난 멍 자국은 마치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새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보, 양아 멍이 사라지지 않아.


  이상하네. 한참 지났는데도 그래?


  까맣게 색깔이 착색된 상태로 남아 있어. 내가 손으로 문질러 보고 그랬다니까.


  아프지는 않고?


  아프지는 않은가 봐. 자기한텐 안 보여주던 가보네. 나한텐 여러 번 보여주더라고. ‘엄마 나 멍 자국 아직 그대로야.’ 이러면서.


  양아 피부가 원래 상처가 잘 낫지 않는 피부인가.


  그런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렇지 어쩜 저렇게 그대로 있을까. 멍 자국 볼 때마다 생각날 텐데…….  저러다 영영 상처가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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