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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y 14. 2024

상처받지 않는 아이를 기르는 법

  엄마와 자식 사이는 너무도 가까워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쉽게 놓치게 된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감정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후회하고 다시 반복되고……. 양아는 좋았던 기억들보다 힘들었던 기억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날이 많다. 너는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조언했지만 어떤 말로도 양아를 변화시킬 수 없다. 어느 순간 그런 진지한 대화와 반성들이 무의미해짐을 느낀다.   

   

  인내력이 바닥이 나고,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될 때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애 키우는 게 참 힘들다.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


  애가 사춘기로 접어들면 정말 힘들어져. 이젠 너도 아이에 대해 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게 맘대로 안돼. 애가 혼자이다 보니 신경도 많이 쓰이고.


  학교에서 친구 관계도 힘든데, 성적도 신경 써야 하고 양아도 보통 힘든 게 아닐 거야. 그맘때가 되면 애도 힘들지만, 엄마들도 힘들어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지.


  사고?


  얘들이랑 다투다가 엄마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어. 우리 동네만 해도 큰일이 몇 번 났었지. 그만큼 엄마들도 힘들다는 얘기야. 아이들이 좀 힘들게 해야 말이지. 절대로 애들은 부모 맘대로 안된다. 명심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모두 내려놓아야 해. 이제 너의 손을 떠났어. 그냥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움직여주면 되는 거야. 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먼저 자식을 키워낸 사람으로서 언니는 자기 일처럼 조언해 주었지만, 이런 조언의 효과는 지속 시간이 짧았다. 이야기를 나눌 땐 많은 걸 내려놓을 것 같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했다.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건 마치 양아를 내려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상담센터에 문을 두드리고 난 후 상담을 받기로 한 날이 다가올수록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또 다른 근심이 밀려든다. 상담사는 네가 하지 못한 일을 과연 해낼 수 있는 사람이긴 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처럼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건 아주 오래전에 형성된 신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반인들과는 어디가 달라도 다른 심리 전문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대학 시절 심리 상담 과목 발표를 망친 날이었다. 심리 상담은 교직 이수를 위해 들어야 하는 과목이었으므로 타과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발표를 위해 강단에 올라섰을 때 낯선 얼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너를 응시했다. 발표자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전혀 없는 얼굴들에서 냉기가 서렸다. 순간 온몸이 경직되고 손으로 리포트를 집을 수 없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말을 할 수 없었던 너는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마도 심리학 교수는 너란 존재가 강의를 듣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강의실은 늘 만원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늘 뒤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너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강의실 앞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름을 부르며 친근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너와는 수업 중 눈이 마주치는 경우도 드물었다.

  어느 날엔가 떨림 없는 발표를 한 날이었다. 교수는 그날 발표한 학생들에게 아무런 코멘트가 없다가 너의 발표가 끝났을 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발표자는 들어가지 말고 잠시 서 계세요.


  영문을 몰랐던 너는 강단에 서서 강의실 뒤편에 서 있는 심리학 교수를 바라봤다. 학생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려 교수를 바라봤다.


  발표자에게 먼저 박수!


  학생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박수가 멈췄을 때 교수가 다시 말했다.


  상담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을 텐데, 성실하게 자료수집을 했군요. 말하는 톤과 움직임, 속도까지 안정적이고, 부족함이 없는 발표였습니다. 여러분 발표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너는 강단에 선 채로 낯선 얼굴들로부터 다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교수의 말처럼 부족함 없는 발표는 아니었다. 그저 떨지 않고 마친 발표에 불과했다. 그날 낯선 얼굴들이 너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발표를 망친 날의 기억과 헤어질 수 있도록 손을 써준 것이다. 심리 상담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담 전문가라면 너와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손을 써줄 거라고…….


  상담받기로 한 날 조퇴를 내고 양아를 태워 청소년상담센터에 도착했다. 양아에게 배정된 상담사와 인사를 나눈 뒤 양아부터 상담실로 들어가고 너는 대기실에서 아이를 기다린다. 약 40분 뒤 양아의 상담이 끝나고, 상담사와 네가 마주 앉았다. 면담 중 마스크를 여전히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벗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상담사가 차를 한 잔 권한다.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차를 받아 든다. 마스크를 제거하는 순간 차를 권한 것도 상담사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 상담실에 있으니 그저 의례적일 수 있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양아와 상담하면서 적은 것으로 보이는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하다. 양아의 마음에서 쏟아진 말들로 채워진 노트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영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해서 여러 방면으로 질문을 해봤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부터 점검의 대상이 된다는 걸 또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양아의 부적응 문제가 마치 너의 문제인 것처럼 조명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더 잃을 것도 없을 것 같다.


  일단 어머니께서 양아에게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너무 많이 주고, 공부를 시키는 과정에서 체벌도 있었다고 말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해서는 안 될 잘못을 한 거죠.


  너의 잘못을 대면해야 하는 순간은,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여전히 수치스럽다. 저절로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세가 한없이 낮아진다.


  양아가 힘들기 시작한 지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보였습니다. 학교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교우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겠지요.


  상담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상담실 밖에서 여자아이의 반항하는 소리와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싫어 안 갈 거야! 싫어, 싫어! 아아 악!


  아이를 저지하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그치지 않는다. 상담사가 뛰쳐나간다. 잠시 후 들어온 상담사가 한숨을 쉬어가며 상황을 설명한다


  방금 울면서 나간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자신의 팔목에 자해하는 바람에 학교 측에서 상담을 의뢰한 학생입니다. 부모님이 여유가 없어서 아이를 데려올 사람도 데려갈 사람도 없고……, 저희가 차량 지원을 해주고 있지요. 집으로 가자고 하니 꿈쩍도 않고, 계속 종용을 하니 저렇게 떼를 쓰네요.


  어딘지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느낌이다. 저런 사례들을 매일 마주하는 상담사가 양아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이곳에서 네가 기대하는 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 상담사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탄탄한 경우는 대부분 스스로 이런 상황을 견뎌낼 힘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집안에서 문제가 있으면 문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다소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인간으로 길렀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상처를 받는 사람은 내면적 힘이 약한 인간이고, 누가 무슨 짓을 하든 굳건히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논리라면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가정 내에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가해와 피해의 문제는 어느 순간 교묘하게 사라지는 것 같다. 이건 마치 엉뚱한 사람을 단두대로 세우는 느낌이다. 이렇게 질타를 당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네가 기대했던 차원의 상담이 아니다. 너는 여기서 그냥 죄인일 뿐이다.


  그럼, 학교 생활을 잘하는 학생들은 집안에서 그런 힘을 길러줬기 때문이라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정서적 단단함이 학습으로도 연결되는 겁니다.


  그러면 상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요?


  일단 양아가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사회성을 기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 있습니다.


  사회성이 상담을 통해서도 길러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부딪히는 부분을 물어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줄 겁니다.


  조언이라면 집에서도 나름대로 상황에 맞춰 조언해 주었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더군요. 물론 그게 적절한 조언이 못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말해주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거나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되짚어보게 했었죠. 감정적으로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무척 조심히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오히려 감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더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조언이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아이에게서 원망의 소리만 들었습니다.


  물론 조언이 실제 생활에서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는 있죠. 그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무척 높다고요.


  그럼 그냥 애들이랑 똑같이 공격하고 싸우라고 해야 하나요?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다분히 도덕적이긴 합니다만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거죠. 도덕적 기준도 옛날과 많이 달라졌고요. 어떨 땐 한 번 성질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공격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 가 아니라 양아가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겁니다.


  어떤 방법이 현실적인 조언이 될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참고하라고만 하는 겁니다.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주는 게 아니라……. 그리고 양아는 또래 아이들과 공유할 만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말을 하던가요?


  네, 집에서 핸드폰을 단속해서 본인은 휴대폰으로 하는 게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게임도 하는 게 없다고 그러고.


  휴대폰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보니……. 보통 아이들 휴대폰은 단속하지 않나요?


  어머님, 요즘은 핸드폰 없으면 친구 관계 맺기도 어렵습니다. 게임도 같이하면서 친해지죠.


  게임 중독에 쉽게 빠지지 않나요? 부적절한 영상도 그렇고 공부에 방해되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보니 경계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조절 능력이 없는 것도 정서적 문제와 관련됩니다. 정서적 공허함이 없으면 쉽게 중독되지 않죠.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즐기라고 장비도 사주고 그러는데요.


  그럼 선생님, 도대체 어떤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 건가요?


  중독 수준이 아니면 됩니다.


  어디까지를 중독으로 보는 건데요?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걸 하는 동안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들 텐데 그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닌가요.


  그것도 본인의 선택에 맡기셔야 해요.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고 밥 먹고 잠자고 이런 일상적인 생활만 하고 있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거죠.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들어올 때보다 마음이 더 복잡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모든 걸 허용한다면 양아가 좋아질 수 있을까. 너는 그럴 수 있을까. 양아는 주어진 자유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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