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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y 10. 2024

지워지지 않는 멍 자국

  아이의 종아리에 남은 멍 자국은 몇 달이 지나도록 여봐란듯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마치 그날의 기억을 몸이 간직하려고 하는 것처럼 세 개의 줄이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다. 아이에게 부모가 남겨 놓은 상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분명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것이다.     


  떨어진 성적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시작한 과외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아의 집중력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외 선생은 양아가 공부한 단원과 범위를 매달 보고서 형식으로 보내 주면서 수업 상황 및 진단 내용을 적어주었다. 처음엔 그야말로 수업 진행 상황으로 채워졌던 보고서는 뒤로 갈수록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양아가 복습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당장 월요일에 배운 내용을 목요일에 물어보면 전혀 대답하지 못합니다. 앞서 배운 내용을 집중하여 노트에 적어보고 실제로 활용해 보는 경험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원래 뭔가를 적으면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으니 노트에 적으면서 암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과외 선생의 진단은 예견된 진단이다. 하지만 배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진단이 계속되는 게 문제였다. 과외 선생은 학습 내용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어야 암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 독서활동까지 권장했다. 독서라면 또래들에 비해 차고 넘치도록 해왔다. 문제는 이해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복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단원은 결국 네가 붙어서 복습을 시켰고, 숙제로 내준 문제를 모두 풀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과외를 왜 시키는 걸까 싶을 만큼 양아의 학습 전반을 집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마저도 너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에 양아가 노출되어 너는 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너의 밀착 관리는 임시적인 방편밖에 되지 못할뿐더러 더는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제삼자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너 혹시 상담받으러 가보지 않을래?


  무슨 상담?


  청소년상담센터라고 엄마가 예전에 한 번 말했었는데, 기억 안 나?


  음, 기억나.


  혹시 힘든데 맘에 담아 두고 못 하는 말이 있다던가, 엄마한테 말할 수 없는 말도 그렇고 상담 선생님께 가면 할 수 있을지 몰라. 당장 뭐가 문제인지 몰라도 상담받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수도 있고…….


  그럼, 상담받아 볼래.


  그래, 전화해 보고 상담 날짜 잡히면 알려 줄게. 엄마한테는 할 말 없어?


  음.


  양아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더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 일이 없을 리는 없다는 걸 안다. 이대로 라면 공부도 공부지만 생활 전반이 무기력에 빠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집과 가장 가까운 청소년상담센터를 검색해 전화해 보니, 바로 상담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 당장 접수한다고 해도 한 달 이상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청소년상담센터를 찾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상담 접수를 진행하면서 상담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막상 무슨 일로 상담을 받길 원하느냐는 물음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힘들어진 게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라…….


  어머니, 그럼 가장 최근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무기력해졌어요. 학교는 나가는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문제죠. 친구 관계가 가장 크고, 다음은 공부 문제예요.


  친구 관계는 보통 공부와 연관이 됩니다. 또래 관계가 무척 중요한 시기라 영향이 크죠.


  그러니까요. 또래 관계에서 시작된 문제인 것 같은데, 성적도 많이 떨어지면서 무기력해진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저한테 얘기하고 조언도 구하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그런 말조차 없어졌으니…….


  학생이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는 건 무척 고무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건 내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다는 신호이긴 하네요.


  그리고 저 말인데요. 저도 좀 지치는 것 같아요. 엄마로서 뭘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제가 하는 조언이나 양육 태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져요. 아이가 이야기할 때 예전 같지 않게 회피하고 짜증 내는 모습도 부쩍 많아져서…….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짜증 내고 말을 함부로 할 때 어머니가 어떤 감정인지 말씀해 주시는 게 좋아요.


  그게, 좋게 말하면 되는데, 저도 감정에 북받칠 때가 있어서요. 그럴 때 밀려드는 죄책감도 있고요.


  감정이 부딪히는 순간도 필요합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일단 우리 쪽에서 학생 먼저 상담해 보고 부모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별도로 연락을 드릴 거예요. 그럼 어머니 상담 선생님 정해지는 대로 구체적인 일정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상담 접수를 위해 잠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막막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뭔가를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상급반을 나오면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의 일로 양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게 분명한데,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크다. 돌아버리겠다고 소리치는 자식을 향해 뺨을 때린 엄마, 버르장머리 없음을 이유로 종아리를 쳤던 아빠. 지금껏 배우고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용해지는 순간이었다. 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말로 너의 모든 폭력 행위를 합리화했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지워지지 않은 멍 자국 때문에 양아는 교복 치마를 입지 못하고 있다. 늘 체육복을 입고 다닌다. 남편이 양아에게 매를 댄 건 생애 처음인데, 좀처럼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의 멍 자국이 밖으로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로 인식할 것 같은 염려가 은연중에 생기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니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너도 학생들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선생님, 먼저 드세요.


  학생들이 길을 내주며 앞으로 가라고 양보한다.


  아니야, 선생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먹을게. 줄 서서 차례대로 먹자.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선생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 이런 걸 장유유서라고 해야 하나. 정말 바쁘면 모를까 줄 서서 기다리지 못할 만큼 나이가 든 것 같지 않아 보통은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선다.


  선생님,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같이 가서 드시게요.


  교장 선생이다. 여자 교장 선생은 나이에 비해 10년은 젊어 보이는 외모에 몸매도 탄탄한 편이다. 시각적인 친밀함  때문인지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 네.


  여기서 더 버티면 좀 이상할 것 같아 교장과 함께 아이들을 앞질러 식판에 음식을 담고 자리를 잡는다. 교장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교장이 자식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애들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는 거 정말 문제 있다고 봐요. 애들이 지가 잘나서 자기 혼자 큰 줄 알지만 어디 그런가요. 저는 애들 클 때 벌도 세우고, 매도 들면서 키웠어요. 좀 엄하게 커서 그런지 사회생활도 잘하고 부모한테도 깍듯해요.


  갑자기 왜 자식 이야기를 꺼내나 했더니 앞자리에 수학 선생과 이야기 중이었다. 나는 뭔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다.


  요즘은 부모가 매를 들면 신고하는 세상이에요. 선생들도 마찬가지고요. 함부로 하면 안 된다니까요.


  수학 선생이 말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인성교육이 안 된 걸까요. 부모 자식 관계는 천륜인데, 부모한테 대들고 신고까지 하는 세상이라니, 정말 말세다 말세. 안 그래요?


  교장이 너를 보고 묻는다.


  아……, 그게, 인권이 강조되는 시대가 된 거죠. 아이들은 우리 때랑 다르게 인권 교육도 많이 받잖아요. 신고하는 법도 가르치고요. 물론 아이들이 인권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애가 하나라고 했나요?


  네.


  금이야 옥이야 키우시겠네요.


  뭐……, 꼭 그렇지는 않고요. 교장 선생님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외동으로 컸다는 소리 들을까 봐 좀 더 엄하게 하는 부분도 있고…….


  제가 초임 때는 학생들 많이 때렸습니다. 그래도 그런 놈들이 졸업하고 인사하러 꼭 오더라고요. 폭력과 교육적 체벌을 엄연히 다른데, 몸에 손만 댔다 하면 폭력 선생이 되는 시대가 된 거죠. 담임 맡으면 아이들이 그저 예뻐서 안아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러면 큰일 나잖아요.


  수학 선생이 말한다.

  교장과 수학 선생과 너의 세대는 또 다른 것 같다. 학교란 곳은 정말 세대의 폭이 무척 크다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속에 베이비 붐 시절에 태어난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너는 아주 친절한 엄마가 되기도 하고 무척 권위적인 엄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너는 다른 과목도 아니고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국어 과목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과목은 인문학이다. 인간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세대를 뛰어 너머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이들 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를 마치고 5교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휴대전화에 ‘중3담임’으로 저장된 번호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양아 어머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한 10분 정도 시간이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네에.


  양아가 부모 폭력 여부에 체크를 했더라고요.


  아……, 그게……. 그렇군요.


  일단 설문에 이렇게 답한 이상 학교에서 관리 대상으로 분류가 돼서 연락드립니다.


  네, 그게, 막 심각한 폭력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애랑 랑이 벌이면서 좀 언성이 높아졌고……. 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렇죠. 우리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실 것 같은데…….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횟수가 몇 번이건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요.


  네, 어머님 그리고 양아가 요즘 태도도 많이 안 좋아졌어요. 수업 시간에 집중도 통 못 하고 성적도 많이 떨어졌는데, 알고 계시죠?


  네, 그럼요.


  어쨌거나 절차상 상담을 몇 번 받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 수업을 들어가야 하는데, 도무지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다. 양아의 지워지지 않는 멍이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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