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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25. 2024

가해자의 계보

  너는 은솔의 엄마를 알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담임에게 양아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해 학생에 대해 개선 지도를 부탁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딱 한 번 담임에게 은솔이 어머니에게 가해 사실을 통보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은솔이 어머니는 은솔이가 양아를 괴롭힌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 어머니에 그 딸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이 통해야 이야기를 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은솔이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가해 사실을 알렸다는 말인지, 하지 않았다는 말인지 모호한 답변이었다. 게다가 피해자의 부모 앞에서 그들을 싸잡아 폄하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다. 물론 담임이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은솔이의 행동을 개선시키기 위한 주의를 주고 단단히 야단도 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은솔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너는 보호자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은솔이 어머니세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전 양아 엄마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담임 선생님께 연락받은 건 없으세요?


  아니요. 무슨 전화요?


  은솔이가 양아랑 학교에서 사이가 안 좋아서…….


  막상 전화해 놓고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투가 하도 쌀쌀맞아서 되려 공격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너는 그저 같은 반 학부모라는 것만 밝혔는데, 잔뜩 촉각을 세우고 경계했다. 하지만 너도 참을 만큼 참다가 맘먹고 전화한 이상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양아와 은솔이의 관계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네요. 1년 내내 둘이 사이가 안 좋아서 양아가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린가요. 전 금시초문인데요.


  학교에서 이 문제로 담임 선생님이 은솔이을 불러 이야기를 했을 텐데…….


  이쯤 이야기를 꺼냈으면 은솔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게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설사 자신의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같은 반 아이의 부모가 전화를 걸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사과든 변명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은솔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너의 말 따윈 듣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단호하게 말 허리를 잘라버렸다.


  은솔아! 너 이리 와봐.


  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잔뜩 화가 난 음성으로 은솔을 부르는 소리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너, 양아랑 싸웠어?


  은솔이 뭐라고 대답했는지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의 나무라는 말투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뭐라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은솔이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담임에게 전화부터 해봐야겠네요.


  우선 제 말부터…….


  이것 보세요. 저도 그쪽 말만 듣고 있을 순 없어요.


  무슨 내용인지는 들어보셔야…….


  상대 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 담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한 번에 두 개의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거세게 너를 압박했다.


  어머니, 조금 전에 은솔이 어머니께 전화가 왔었습니다.


  화가 난 걸 꾹꾹 누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네,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은솔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거든요.


  은솔 어머니 우셨어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어떻게 하셨길래 저한테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고 양아는 계속 힘들어하니, 은솔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무슨 말도 못 했습니다. 다짜고짜 담임 선생님께 전화한다고 끊어버렸으니까요.


  은솔이도 제 제자 아닙니까. 제가 양아 편만 들어줄 수는 없는 거죠.


  선생님, 누구 편을 들어주다니요. 양아가 계속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보호자인 제가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은솔이 어머니도 이런 사실을 아셔야죠. 은솔이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부모라면 자기 자식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식이 밖에 나가서 피해나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건가요. 답답한 노릇이네요. 이런 말까지 선생님께 해야 하나요.


  네, 어머님도 참을 만큼 참으셨죠. 애가 말을 해도 들어 먹어야 말이죠. 아무리 타일러도 개선되지 않으니. 어머니께 알렸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5학년 담임은 꼭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만큼이나 미숙한 사람이었다. 지금 이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분별하지 못할 만큼. 사람들이 학폭위와 경찰에 신고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담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사, 자기 자식의 잘못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무례한 보호자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왜 신고부터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학폭위가 열린 상황을 떠올려 보았을 과연 그것이 양아를 위한 제대로 해결 방안인지 자신할 없었다. 오히려 양아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씌어짐과 동시에 문제적 인물로 남게 될까 두려웠다. 사과할 기회와 화해의 기회를 그들은 결코 얻을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그때 은솔 엄마처럼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어야 했을까. 아주 끝장을 볼 마음으로 너도 막 나갈 수 있었다면, 그러면 다시는 골치가 아파서라도 조심하지 않았을까. 담임이든 은솔 엄마든 은솔이든.


  은솔 엄마와는 사실 마주친 적도 있다. 학부모 임원인 그녀는 헬리콥터맘의 전형이었다. 늘 은솔 곁을 맴돌며 아이의 주변을 서성였다. 너는 학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학교에 붙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양아의 말에 따르면 학교의 모든 행사에 은솔 엄마가 나타났다고 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피아노 연주 발표회가 있던 날이었다. 피아노 연주 발표회가 있던 날 양아는 집으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너무 속상해!


  왜? 피아노 연주 틀리기라도 했니?


  아니, 은솔이 연주를 틀리는 바람에, 갑자기 연주를 멈춰버린 거야.


  합주라고 하지 않았니.


  나는 계속 치려고 했는데, 은솔이가 멈추는 바람에 같이 멈춰버린 거야.


  그래서?


  연주를 망친 것도 속상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은솔이 엄마가 올라와서 은솔이만 데리고 가버렸어. ‘괜찮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야.’ 그러면서. 무대 위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는데, 어쩔 줄 모르겠더라.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었는데.


  학부모라는 사람이 자기 아이만 달랑 데리고 내려갔다는 거야!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래서 혼자 내려온 거야?


  그럼 어떡해.

  

  은솔과 양아의 합주는 정말이지 어이없게 이루어진 무대였다. 담임이 양아를 지목하면서 피아노 연주를 하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그런데 양아를 잔뜩 견제하고 있는 은솔이 자신도 피아노 연주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는데, 너는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던 선생이 둘 사이를 뻔히 알면서도 합주를 하라고 시킨 것이다. 담임이 시키는 것이라 거절할 수 없었던 양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은솔과 합주 연습을 한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습하다가 은솔이 자기 파트를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바람에 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엘리제를 위하여로 곡을 바꿨다.  결국 억지로 붙여 놓은 합주는 두 아이 모두에게 불쾌한 경험을 남기고 끝이 났다.  


  처음부터 합주 안 한다고 하지 그랬니.


  선생님이 하라는데 어떡해.


  은솔이가 너를 견제하고 피곤하게 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나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한다고 했단 말이야. 학교에서 하는 중요한 행사라면서 손님들이 많이 올 거라고 했어.


  그 중요한 행사라고 하는 건 동문들을 초대하는 행사였다. 동문회를 통해 장학회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서 학교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보니 학교 측에서는 매년 행사를 열었다. 동문이 아닌 학부모는 참여할 필요도 없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은솔 엄마가 나타나 아이들의 무대 위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잖아.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틀렸는지 모르지 않을 거야.


   아이를 달래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거넸을 때, 양아는 너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울음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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