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 영국사에서
단풍이 내려온 햇살 가득한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노래 공양을
좋아하는 이에게 할 말을 생각하며 설렘에 잠 못 들었던 날이 있었지요. 어디서 주워들은 이 말, 저 이야기를 맞추어 편지를 써서 내일은 꼭 만나 전해줘야지 하며 다짐했죠. 하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전해주지 못합니다. 언제나 먼발치에서, 또는 그 애 집 올라가는 골목에서 마냥 서성거리다 그냥 만났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가는 길 만원 버스의 인파 속에 파묻혀 있을 때였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있는 아득한 그 애와 운 좋게 같이 버스를 탔습니다. 나는 두근거려 식은땀이 납니다. 빽빽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천정의 손잡이를 가까스로 잡고 있으면서 버스기사님의 마음 따라 이리저리 비틀, 뒤뚱거리지만 나의 마음은 콩닥콩닥, 머리는 새하얘지고 맙니다. 두사람쯤 건너 그 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은 나날 밤새 외웠던 말도 하지 못하고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녔던 편지조차 꺼낼 용기가 없는 겁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애는 내 마음을 아는지 본인 학교에서 내리지 않고 10분을 더 가야 하는 우리 학교까지 왔습니다. 그때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 그 겁쟁이는 그 한마디조차 건네질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고 바랬던 그 애와의 만남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40년이 지난 후 등산을 하다 그 애, 이제는 그녀를 만났었지만, 그때처럼 서로 부끄러워 말 못 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득히 세월이 지난 후 그때가 생각납니다. 다음 기회가 있을 줄만 알아서 오늘 겁나는 일들은 내일로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 한번 붙이지 못했던 아쉬움을 기억으로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절대 나중으로 미루고 살지는 않습니다. 오늘 저 산에 등산을 하고 싶으면 그 산에 올라가고, 저쪽 단풍길에 차박을 가고 싶으면 거기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조금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생기기는 합니다만 용기를 내어 시도하고, 도전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런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모두 하려 합니다. 내년에 하자는 말이 또 아쉬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2023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우리 부부는 영국사에서 1km쯤 떨어진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영국사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항상 이곳에서 천태산 계곡길을 따라 영국사로 갑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왕복 2km,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즐겁습니다.
“혹시나 오늘은 무료 점심 공양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잿밥에도 관심을 가져봅니다. 올 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 듯 내려가시는 한 분이 “지금 점심공양 중이랍니다. 서둘러 올라가서 드세요.”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얘기를 듣고는 남편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지더니 급기야 뛰어갑니다. 그렇게 도착했지만 점심 공양은 이미 끝나버렸네요. 그렇지만 조금 늦은 사람에게 주는 백설기와 바나나가 있어 덜 서운했습니다.
백설기를 먹고 감사함에 시주를 하려고 대웅전으로 가는 도중, 오늘 영국사에 큰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산제, 공민왕의 길 따라 걷기 대회, 그리고 산사음악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았어요.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또 우리는 이 행사들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곳은 바로 대웅전 바로 앞, 무대가 세팅되고 우리는 가을에 가장 귀한
선물을 받는 들뜬 마음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맑디 맑은 햇살을 따라 내려온 온갖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어린이가 뛰어놀면 딱 좋을 듯한 대웅전을 감싸고 있습니다. 만약 가을의 정취에도 등수 있고, 내가 꼭 이 점수를 매겨야 한다면 오늘은 1등급,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눈앞에는 대웅전의 앙증맞은 작은 뜰이, 또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면 큰 은행나무가, 또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온갖 바위의 형상이 모여있는 천태산이 고찰 영국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산사음악회는 관객은 물론 부처님도 잘 보실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은 대웅전 앞에서 열렸습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함께 이 음악회를 보신다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한 기분입니다.
음악회가 끝나면 노래자랑 대회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주저 없이 신청했습니다. 수십년 전 그때 전해주지 못한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1번으로 올라간 무대 ‘아이쿠야. 모니터가 없네, 큰일 났다. 박자는 맞출 수 있을까? 가사는 잊어버리지 않을까? 도무지 걱정이 멈추지 않습니다. 기권하고 도망갈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음에, 내일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살지 않겠다고 한 다짐이 생각납니다.
“그대 잠든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이 밤을 지키는 나~아~는 나는 바람이려오.”
남겨준 한마디가 없지만, 그때 그 애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그 말들, 편지를 지금도 지니고 있는 듯 편안한 마음으로 경쾌한 반주에 따라 나름 고함을 질러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을 뿐 아득히 지난날처럼 느껴지는 지금 같은 몇일 지난 지금, 이제야 그때 내가 진짜 무슨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 맘대로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또 우리 부부가 그것들을 하고 그곳들에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용기 있는 가슴을 주시고 성한 다리로 마음껏 걸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기도하듯 가을 그 따뜻한 햇살이 빨갛고 노랗게 스며든 단풍잎 아래서 부처님께 노래로 공양을 드린 것 같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큰 힘을 낸 나에게 스스로 대견함을 느낍니다.
내려오면서 본 영국사 은행나무는 문광지처럼 노란 빛을 띄지않았지만 나무의 규모와 위엄에 눌려 숙연해집니다. 1300년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 큰 몸을 떨며 울었답니다. 공민왕의 길로 내려가면서 현재 나라의 국태민안도 빌어봅니다. 샛노란 은행나무를 보고 싶어 잠시 들러가려고 했던 영국사에서 하루 종일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