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날씨가 맑았다. 집에만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집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적당히 그늘진 자리에 돗자리를 널찍이 펴고 네 귀에 가져온 소지품을 올려 고정시켰다. 사은품으로 받은 간이용 베개 위에 머리를 이고 대짜로 뻗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던 찰나
- 저.. 고양이 좀 도와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마한 아이가 내 옆에 서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 예닐곱 살 즈음되었을까 눈이 금세 촉촉해져 울 것만 같은 얼굴이다. 야! 모르는 삶이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다. 아이도 당황했지만 나도 당황스러웠다.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를 도와달라고? 애 엄마는 어디 갔지? 고양이는 둘째치고 얘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엄마는 어디 있어 혼자야? 고양이 도와줘야 돼?
- 저는 산책을 나왔는데요 고양이 좀 도와주세요.
고양이를 도와달라니. 구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도와달라니. 무슨 말일까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긴 할까? 내가 도움이 되기나 할지. 어쨌든 아이손에 끌려 공원 저편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고양이가 간이 철조망에 목이 끼어 있었다. 퍽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길냥이라 사람을 어지간히 무서워할 것 같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이미 탈진한 것 같았다. 탈출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어 야할 것 같다. 철조망을 풀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잘 늘어나지 않았다. 고양이 목과 철조망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는데 고양이 숨통이 더 조여들것 같아 여의치 않았다. 이를 어쩐다.
- 저 죄송한데요 혹시 뺀치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공원을 빠져나와 인근 상가 철물점으로 향했다. 일요일인데 다행히 영업 중이었다. 사장님은 아무 말씀 없이 두툼한 뺀치를 건네주셨다. 필요한 곳에 쓰이겠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영영 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무표정.
빌린 뺀치를 작은 틈에 끼워 넣고 철조망을 잘랐다. 숨통이 트여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고양이는 부리나케 도망가버렸고 아이는 고양이를 여러 번 부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장면에서 마지막에 고양이의 보은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다못해 쥐새끼를 물어다가 툭 던져놓고 사라지지 않을까? 어색한 30초가 흘렀고 뺀치를 반납하려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 고양이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고양이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상황, 고양이의 구출과 안도,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실망. 아이의 기분은 몇 번이고 롤러코스터를 탔을 텐데 마지막이 어른스러웠다. 고양이의 보은은 없어도 아이의 보은은 있는 것일까? 인사 한마디에 나도 평온한 주말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세련된 종지부를 찍은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곰곰 생각했다.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 덕분에 살았는데 그냥 돌아간다고? 아무리 냥냥하기로서니…
몇 주 후 또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반듯하게 펴고 누웠는데 고양이가 내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아닌가. 그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아이에게도 인사를 건넸을까? 고양이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래 알아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