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믿음 없는 세상

by 샤토디 Jun 18. 2024

현행 사기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사기 피해금액이 300억 원을 넘으면 형량은 6~10년이다. 만약 사기죄 최고형량을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산술적으로 1년형에 30억~50억의 변제가 이루어진다. 대부분 그 정도 머리를 쓰는 사기범들은 검거직전에 모든 불법취득자산을 은닉하므로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그걸로 끝이다. 민사로 길게 물고 늘어져도 결국에 승자는 범죄자들일뿐이다. 다행히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사기죄에 대한 형을 대폭 상향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절도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중 대다수는 단순 절도이며, 우발적인 범행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범죄자의 변은 아니지만 먹고사는 것이 암담하여 눈앞에 있는 유혹을 저버리지 못해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2015년 이후 사기죄가 여러 범죄유형들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더니 현재까지 부동의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범죄 사건 4건당 1건은 사기라니. 우발성과 거리가 먼, 철저히 계획적인 범죄다. 게다가 사기죄로 입건된 피의자들의 다수는 20대라는 통계도 발표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손(手)은 공공재의 성격이 강했다. 옆집에 아이를 하룻밤 맡긴다든지, 옆집에 김장하러 가서 품으로 몇 포기를 받아온다든지, 수재민을 돕자며 구호금액이 TV에 실시간으로 집계될 때 작년보다 더 모아야 한다며 너도나도 끌어다가 기꺼이 보낸다든지. 나라의 위기라며 같이 극복하고자 집에 있는 금을 모두 긁어모아 세계의 이목을 끈 사건들.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남들에게 선을 베풀 때,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야말로 이타심의 발로였다. 비단 행위가 전제되지 않더라도 막연한 사람 사이의 믿음이 사회를 감싸고 있었다. 


열거할 이유야 끝도 없겠지만 이제는 일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음이 서 있을 공간이 없다.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이 '먹고살기 위해 그랬다'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속는 놈이 바보라며 배신당한 사람들을 빈번히 조롱한다. 결과만능주의에 적절한 브레이크를 걸어줄 성숙한 합의가 필요함에도, 이 같은 거대한 물결은 단 십수 년 이내에 사회를 잠식했다. 한탕하자. 이것 떼고 저것 떼면 결국 이익이야. 이러한 생각을 잡아줄 큰 어른이 없다. 젊은이들을 향한 교육자들의 말도 풍파 속 돛단배에 올라탄 노인처럼 무력하다. 사기꾼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판을 치기 너무 좋은 세상이다. 믿음이 사라진 세상.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의 한 구절이다. 사랑이 으뜸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기생충과 구충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