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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따뜻한 빛을 찾다

by 김태양 Dec 27. 2024


한 해의 끝자락, 계절은 언제나 끝을 고하길 거부한다. 돌아보면 계절의 끝자락에서 느낄 수 있는 차가운 바람과 더딘 변화는 우리에게 늘 익숙한 아픔을 선물한다. 그러나 그 아픔은, 생각보다 단순히 고통이나 슬픔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어딘가에 놓고 온 마음의 무게가 있다. 계절이 바뀌는 이 순간, 우리는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낸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나를 꽉 붙잡는다.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딛을 때마다, 내 마음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따뜻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시간이 흘러버린 자리에 새로운 것이 쌓여간다. 이 겨울의 공기 속에, 우리는 여전히 그 따뜻함을 찾아 떠나게 된다. 눈을 맞는 순간, 그 작은 하얀 결정들은 마치 내 마음처럼 느껴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 순간의 기억도 사라질 수 있지만, 그런 기억들이 쌓여 만들어낸 내 안의 따뜻한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여전히 기억은 따스하다. 그건 눈 속에 숨은 온기 같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겨울을 지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을 잃고 더 많은 것을 붙잡으려 애쓴다. 우리가 손을 뻗어 잡으려는 것은, 사실 우리가 이미 떠나보낸 것들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사랑, 지나간 추억,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에게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런 추억들을 한 번 더 되새긴다. 아마, 우리는 모두 조금씩 더 담담해지고 있다. 상처가 아물듯이, 시간도 우리를 덮어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을은 길고도 짧았다. 그 순간의 공기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나 뚜렷한 기억이지만, 이젠 그 사람의 목소리조차 잊고 있다. 계절은 그렇게 우리를 잊게 만들지만, 그 잊혀짐 속에 숨겨진 아픔은 여전히 남는다. 나는 그 아픔을 알고 있다.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한다. 그리움은 끝내 나를 덮어버리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진실은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계절이 바뀌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상처도 결국은 치유된다.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겨울은 나를 끌어안으며 그 모든 생각들을 털어낸다.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조금씩 차가워지는 몸은 어쩌면, 그 모든 상처들이 나를 이토록 감싸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는 겨울 속에서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 바로 그 온기가 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나를 따뜻하게 만든 건 결국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난 그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고, 그 희망은 다시 나를 일으킬 것이다.


그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겨울을 지나며 마주한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더 깊고 넓은 곳으로 인도해준다. 계절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가을이 와도, 결국 나는 그 한겨울의 찬 바람을 떠올린다. 그 속에서 발견한 따뜻함은 모든 계절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겨울은, 그래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겨울을 기다린다. 그 차가운 바람이 내게 전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내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여전히 그 온기를 찾아 떠나면서도, 그 끝자락에서 다시 따뜻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며, 그 끝자락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건 겨울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가 지닌 따뜻한 빛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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