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계절은 늘 제멋대로다. 늦은 가을의 노랗게 물든 잎들이 도망치듯 흩날리는 순간에도, 겨울의 초입은 이미 서늘한 공기로 숨을 옥죈다. 계절이란 늘 이렇게 한발 앞서 달려간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계절을 닮았다. 떠나보내야 할 때는 붙잡고, 잊어야 할 때는 끊임없이 끌어안는다.
나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마음이 가을에 머물러 있을 때, 겨울은 내게 준비되지 않은 추위를 선물한다. 내 손끝이 시려오는 순간에도 나는 끝내 두꺼운 외투를 꺼내지 않는다. 사람도, 계절도, 어쩌면 시간에 순응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존재인지 모른다.
겨울이 깊어지면, 모든 것은 잠든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있다. 얼어붙은 땅 속에서도 뿌리는 한 뼘 더 깊이 숨을 쉬고, 눈 덮인 나무는 언젠가 피울 꽃을 기다린다. 계절이 가져다주는 이런 묵직한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중심을 찾는다. 춥고 고요한 날들이야말로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을 허락한다.
이 계절의 끝에 서서 나는 묻는다. “너는 어떤 계절이니?”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알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봄이 오기를 꿈꾸는 한겨울이다. 새하얀 눈밭 위에 희미하게 숨겨진 푸르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새싹 같은 마음.
계절이란 결국 지나간다. 하지만 지나간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시린 겨울의 끝에서, 나는 매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계절도, 어떤 시간도 허투루 지나지 않는다고. 계절의 온도와 빛은 모두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덮고, 녹이며, 자라게 한다. 마치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또 하나의 날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니 당신도 묻기를. “지금 당신의 계절은 어떤가요?” 그 대답 속에는 당신만의 날씨, 당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