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감각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과정
집 뒤에 문화재가 있으면 그곳은 소풍 장소가 된다.
게다가 걸어서 갈 수 있는 수목원 같은 환경이라면 여지없이 백 프로 확정이다.
나에겐 장릉이 그런 곳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이곳에 도시락을 싸서 갔어야 했고
너무 흔해 보이는 이곳에 무뎌 디다 보니 이곳의 의미가 많이 저평가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역사와 서먹해질 즈음에 서울에서 이름난 문화재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집 뒤에 있는 문화재가 가진 의미에 대하여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어 보였고
이번 경기그랜드투어 시즌 4를 기회삼아 다시 보기로 했다.
최소 15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이곳을 들어가 보지 않아서
길이 많이 닦여지고 입구부터 꽤나 근사해진 모습이 낯설었다.
특히 예전에 중구난방 나 있던 흙길은 방향성이 없어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듯한 느낌이라
제각각 다른 라인을 그리며 걸었어야 했는데
들어가서 나오는 루트가 통일되었다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남의 동네만 돌아다니다 보니 잊고 있던 지역 주민 할인을 받아
반값이 된 입장료의 묘미를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인지 감개무량했고
추존왕 원종과 인헌황후 구 씨의 묘인 집 뒷산에 있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에
서울 사대문까지 가지 않아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걸어서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는 것에
등잔 밑에 있느라 상당히 무심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산림욕을 하며 걷는데 날씨가 오버를 하는 바람에
반환점인 저수지에 난 길을 지나다가 노릇노릇 익을 뻔했다.
더울 것이라 예측은 했으나 대비책을 전부 차에 두고 온 바람에
바람 한 점 없는 햇빛 아래 아무런 방어를 못 했고
차로 돌아왔을 땐 그로기 상태로 혼이 나갔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주말에 양평으로 향했다.
경기그랜드투어를 떠나면 항상 폭우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 날도 그랬다.
비 온 뒤에 만나는 맑은 공기는 좋지만
긴장감 넘치는 아슬아슬 위태로운 운전대는 좀 그런 입장에서
무사히 서호미술관에 도착했다.
사실 이곳은 양평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경유한 곳이었다.
팝 아트와 스트리트 아트 관련 전시를 봤던 기억에
현재 활동하고 있는 2~30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궁금해서 매표를 하고 들어갔는데
본관 1층만 있었다면 '낚였다! 예상과 다르네?' 했겠지만 이곳엔 히든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별관이었는데 본관에서 별관으로 가는 길에서
벤치에 잠시 앉아 북한강에서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과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백로가 어우러져
도심에선 찾기 어려운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한옥 안에 디스플레이된 작품들을 통해 팝아트의 다채로움 속 단아함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양적인 선과 서양적인 비비드함이 서로 상충하지 않은 부분에서
미술관이 의도한 크로스오버의 묘미를 엿볼 수 있었다.
한편 별관 관람 당시에 관람객이 우리밖에 없어
한옥을 잠시 빌려 피서를 온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가
"이렇게 지으려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 생각보다 속세에 잔뜩 찌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