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전국일주 단양, 강릉, 고성 편
무리하면 탈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라던가......
단양에 가는 길에 컨디션 난조를 마주했다.
단순히 수면 부족인가 했더니 전국일주가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로 작용한 듯했고
그 결과 몸살과 감기 그리고 스트레스성 장염이 트리플 액셀처럼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도담삼봉의 아침은 아픈 것도 잊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글로브박스에 채워뒀던 비상상비약도 지체 없이 작용하며 살아난 듯했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것이 생각나 새벽에 찾은 목욕탕은
찬 데를 고수하던 기존 입장을 전복시키기에도 충분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단양에서 머무르다 이천을 가는 것인데
루트를 비틀어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기로 한 소식을 접한 친구가
강릉에서 나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국도를 타고 단양에서 강릉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출발할 땐 경치에 한껏 취해 좋았는데 크루즈 컨트롤이 없는 이 차를 타고
저속의 풍년을 뽐내는 국도로 구성된 경로는 대환장 파티를 경험하게 했다.
강릉에서 나를 반기는 친구 덕분에 정동진도 구경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고성을 바로 가는 일정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중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것 하나에 책임감이 생겨나며 의지를 굳게 다질 수 있었다.
심지어 친구는 가족 먼저 보내고 혼자 터미널에 남아 나를 기다린 것이었다는 이야기에
이 약속을 아프다고 취소했으면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마 이 당시에 아픈 게 좀 남아있었던 이유에 정동진 사진을 또 빼먹었다.
하......
부산에서의 교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역시 혼자 다니면 여유가 사라지고
나를 체크하는 사람이 없으니 뭐든 패스와 스킵으로 무마하려 한다.
그래도 마지막 목적지인 고성으로 다시 채비를 하고 출발했다.
진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들린 곳은 또 테디베어......
테디베어뮤지엄 설악이었다.
이쯤 되면 전국일주인지 테디베어 뮤지엄 도장 깨기인지 애매해지는 분위기였는데
그래도 제주도를 제외하고 내륙에 있는 4군데를 전부 가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걸리버 테디베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귀엽긴 한데 돌아다닌 거리가 2,000km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자동차는 그 어느 때보다 쌩쌩하다는 점은 다행이었으나
사람이 극도로 노쇠해져 가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건 테디베어뮤지엄 4군데 중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다채로운 구성이라는 점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곰이고 곰이 내가 된 듯했다.
여수부터 매일마다 테디베어를 보니 오죽했을까 싶지만
단순히 로망을 실현한다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테마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디베어뮤지엄 설악까지 보고 나오니
한 달 동안 준비했던 전국일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는 그저 생각에서만 머물었을 여정을
직접 실행해 봤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해보지 않았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아무 탈 없이 이어왔다는 부분이 제일 다행이었다.
테디베어뮤지엄 설악이 대명 델피노리조트 안에 있다는 게 생각난 순간
여기에도 코인 세탁소가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남은 세탁물을 처리하고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빨래를 돌리는 동안 리조트를 거닐며 남은 여유를 쥐어짰고
마지막 목적지인 정서진으로 갈 체력도 여기서 충전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기 전 굶주린 배를 채우면서
다시 도진 장염을 달래려 고른 잣 순두부......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입맛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어쩌겠는가.....
살려고 먹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털어 넣고 한두 시간만 잘까 하고 차에서 눈을 붙였는데
눈을 뜨니 6시간을 잤네!!!
진작에 도착했을 시간에 출발을 하는 상황이 웃프기도 했지만
그제야 정신이 좀 들어 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