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성적 확인 기간도 끝났고, 하지만 아직 방학식을 하지는 않은 상태. 여자아이들은 몇몇 '공부하는 기계' 인 애들을 빼놓고는 쉬는 시간마다 몰려다니며 화장을 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교실 뒤편 창가 근처(최고의 명당 자리다)에서 신나게 놀고 있어서, 김보람이 내게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최정의, 이거, 선물이야."
보람이가 툭. 하고 리본으로 포장된 손바닥만한 네모난 박스를 내 책상 위에 놓는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보람이를 바라보았다.
"으,응?이거 왜ᆢ"
"너 생일이 일월이라 방학 때잖아? 전에 니가 내 생일에 선물 준 게 기억나서. 미리 생일 축하해. "
"어ᆢ 응ᆢ 고마워ᆢ"
어색하게 대답하는 내 얼굴을 흘깃 보더니 보람이는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헐ᆢ 이걸 어떻게 하나ᆢ얘가 대체 무슨 의도인 거지?
그리고 생각해보니 전에 보람이가 나를 일대일 톡방에 초대했을 때 내가 답도 없이 아뜨ᆢ하면서 나가버렸는데, 보람이는 그 일에 대해 왜 그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전 처럼 내게 시비를 걸지도 않고, 말투도 훨씬 부드럽고, 뭐지? 왜지?응?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주변의 공기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오후 종례 때,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부르셨다. 나는 내심 또한번 심장이 쫄깃거림을 느끼며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혹시 또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정상 참작을 해 주겠다. 영원히 숨길 순 없다. 네 이름처럼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뭐 이런 말을 하시려는 건 아니겠지. 우리 담임샘은 법조인인 아빠 이야기까지 하실 분은 아니야,.
"정의 왔구나! 이거 받으렴!"
담임샘 목소리 텐션이 아주 높았다. 선생님은 내게 하트 모양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알알이 황금색 포장지로 싸인, '그' 초콜릿을 건네셨다.
와, 보람이가 준 네모난 일본 초콜릿이랑 점심시간에 고나영이 내 책상에 놓아둔 계란 모양 초콜릿, 그리고 방금 선생님이 주신 거까지 따지면 모양과 종류는 다르지만 오늘부로 초콜릿 선물만 벌써 세 번째다. 아니ᆢ 평소에 내가 초콜릿 좋아한다고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ᆢ 갑자기? 이렇게나 많이?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라고 한 사람이 시인 바이런이던가ᆢ 딱 그 기분이다.
"선생님이 그동안 정의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줬네? 근데 정의가 그렇게나 열심히 수학공부를 했던 게 이제야 드러나는 건가 봐? 선생님은 너무 뿌듯하고 정의가 기특해!"
환하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 뒤로 나와 담임샘과의 대화를 지켜 보고 있는 본교무실 다른 선생님들의 미소가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 처럼 깔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담임샘은 분명 내게 뭔가를 시키려는 것이다.
"ᆢ그래서 말인데, 선생님이 정의에게 뭐 하나 부탁해도 될까?"
헉. 선생님이 타서 건네 주신 믹스커피를 뿜을 뻔 했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지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