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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삶-12

12. 순진이와 경쟁하라!

by 아스트랄

선생님은 차근차근 말씀하셨다.


"정의가 이번에 수학 만점을 받아서, 선생님이 너무 놀랐어. 그래서 말인데, 다들 잘 알다시피, 수학은 사교육을 안 받으면 안 되는 과목이잖니?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부모님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공부는 하고 싶지만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이번 겨울방학에 방과후 학교도 개설되지 못했고ᆢ 그래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2학년 선배들이 학습멘토가 되어서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까 해. '겨울방학 3주 수학멘토링 캠프'라는 이름인데, 어때? 학교 자습실을 개방하고 절대 춥지 않게 난방도 틀어줄 거야. 교육청 지원금으로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 점심대용 간식도 줄 거야. 후배들은 무료로 공부하고, 선배들은 가르치면서 더 배우고 성장하는 거지."


여기까지 선생님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는 감이 찌르르 왔다.


흠ᆢ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저의 자율 진로 비교과 영역 생기부가 빵빵하게 채워진다는 거군요ᆢ


여기까지 사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순간 내가 드디어 현실을 망각했구나ᆢ 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세요! 내 수학 실력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고요!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했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저ᆢ 선생님, 아시다시피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ᆢ 이번엔 운이 좋아서 백점 맞은 거고ᆢ 저번 시험만 해도 그냥 기둥 세웠는데ᆢ "


거의 울먹거리듯 말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정의야! 그건 샘도 잘 알지! 하지만 샘은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정의를 추천하는 거야! 수학을 잘 못했던 만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이해하고 그 눈높이에서 설명을 잘 해주지 않겠니? 그리고,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나오거나 막히는 게 있으면, 순진이와 함께 풀어보면 돼! 순진이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봉사하기로 했거든."


순진이? 걔는 덴마크 간다고 하지 않았나ᆢ?


"순진이요?"


"응. 사실은 순진이가 내년에 외국으로 유학 가는데, 가기 전에 후배들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다고 하더라ᆢ"


순진이. 그러고 보니 나의 모든 영예와 불안의 시발점은 그 아이다. 나는 사실 그 애에게서 엄청난 선물을 받고서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거다. 근데 자기도 나한테 그랬잖아. 아는 체하지 말라고. 근데 이번 겨울방학 내내 만나게 된다면ᆢ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후배들에게 내 수학실력을 들통낼 순 없어!


"선생님,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요. 다른 학생을 찾아보시는 게ᆢ"


겨우겨우 거절의 말을 주워섬기고 있는데, 등 뒤에서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저 부르셨어요?"


뒤를 돌아보았다. 강순진이다. 교무실 출입문에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고, 여전히 '순진'한 얼굴을 하고,

마치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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