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네 그거 들었냐?"
긴 머리를 사과 모양으로 틀어 올리고 화장을 진하게 한, 우리 반 사이비 일진. '고나영'이 뒷문을 발로 차다시피 하고 들어와서는.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묻는다.
"뭘 말야?"
어리둥절하면서도 짜증 난 표정으로 내가 다시 물었다.
쟤는 왜 저렇게 목소리가 클까.. 정말 귀가 아프네.
"강순진이 유학 간대! 그것도 덴마크로 간다는데?"
"뭔 소리야? 걔가 왜?"
"먼일이래ᆢ 설마 이번 기말고사 성적 조금 떨어졌다고?"
"부자라더니ᆢ 사실이었구만ᆢ"
아이들은 다들 한 마디씩, 추측성 멘트를 날렸다. 하지만 난 지금 순진이가 덴마크든 부탄이든, 이민을 가든 말든 그게 전혀 궁금하지 않다. 이틀 전, 김보람이 오픈채팅방에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보람이와 나는 사이가 좋지 않다. 미성년자인 주제에 지난 여름방학 때 이미 쌍수에 양악에 보톡스까지 맞고 돌아온 그 애를 보고 반 아이들은 겉으로는 예쁘다며 몇 마디 해 주었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은 뒤에서 보람이를 씹은 적이 있다.
걔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마다 시비조였고, 나도 걔랑 싸우기 싫어서 대충 되도록 눈도 안 맞추고 근처 자리를 피하며 지냈다. 잘못해서 학폭이라도 연루되어 평생 생기부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건 최악이니까.
하지만, 수학 100점을 받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던 바로 그때, 보람이에게서 그 문자를 받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 쫄깃해짐을 느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내 앞에 영원히 검은 커튼이 쳐지는 듯한 공포.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혹시 보람이가 내 비밀을 알게 되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난 순진이가 준 수학 문제집 자체를 학교에서 꺼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날은 사물함에 교과서가 다 있었고, 필통은 가방 앞 투명 망사주머니에 있었다.
김보람이 내 짝이 된 것도 바로 시험 전 주, 순진이가 학교에 안 나오던 날이었다. 시험문제를 보람이에게 들켰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내가 보람이에 대해 한 말들이 우연히 그 애 귀에 들어갔고, 그래서 걔가 나를 불렀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김보람'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뜨거운 불에 덴 듯 바로 차단해 버렸다. 나는 걔랑 할 말이 없다. 전혀.
다행히 아직까지는 보람이가 학교에서 나에게 말을 걸거나 하진 않고 있다. 만약 보람이가 내 수학 성적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면 난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 내가 단순히 문제와 답만을 외운 것만은 아니니까. 시험 문제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들을 한 문제당 적어도 다섯 개 이상 풀어서 완전히 익혔다.
난 열심히 수학 공부를 했고, 신(?) 이 그런 나에게 행운의 기회를 준 것뿐이다. 이 정도는 받아도 되는 것 아닌가? 누구 아들 딸들은 대놓고 엄빠와 친분 있는 대학교수 연구논문 보고서 표지에 공동연구자로 자기 이름 석자를 떡 하니 박는다던데. 엄빠랑 같이 교수 연구실 가서 희희낙락 차 몇 잔 마시고 정리나 청소 조금 도와주는 척 얼굴 몇 번 내밀고 '하늘'대 합격인데 말이야.
기껏해야 기말고사 단 한번, 지필 100점 받은 게 뭐가 그리 잘못이라고.
그런데 최정의.
너 정말 '정의'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