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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삶-13

13. 정의로운 삶을 위하여

by 아스트랄

"정의야! 정의야! 야야ᆢ답안지는 주고 자!!"

"으ᆢ응?"


여긴 어디..? 난 누구..?


내가 겨우 책상에 엎드렸던 얼굴을 들자 뒷자리 홍성아가 내 팔뚝 아래 눌려 있는

수학 답안지를 힘들게 빼 간다.


아. 여긴 학교. 나는 최정의. 그리고 지금은 모의고사 2교시 수학 시간이 막 끝나 답안지를 걷는 중이구나.


나는 어제 열심히 유튜브에서 '수학 성적 올리는 법'에 대한 온갖 강연을 듣느라 밤을 새워서 겨우 등교했고, 1교시 국어를 푼 뒤 2교시는 열심히 답안지에 다이아몬드를 그렸고(일자 기둥세우면 또 교무실에 불려 가니까), 그러고 나서 정신없이 자는 중이었다.


근데ᆢ 나 수학시험 100점 맞는 꿈 꿨네ᆢ?

저기 강순진이 나한테 시험문제를 줬는데ᆢ?


흐흐. 꿈이라도 참 행복했다.

으으ᆢ 막 기지개를 켜며 쉬는 시간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나는데, 저 멀리 강순진이 나를 보며 웃는 얼굴과 마주쳤다.


'아니ᆢ 쟤가 왜 내 꿈에 나타났냐고ᆢㅠㆍㅠ'


순진이가 일어나서 내 자리로 온다.


"야! 최정의!! 너 또 잤냐? 한 문제는 풀었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걸크러쉬를 연상시키는 목소리. 항상 523명 중 523등 또는 522등을 자랑하는 네가 나한테 물어볼 말은 아닌 듯싶은데ᆢ나는 찍기라도 하지, 너는 백지 낼 거면서 학력평가일에 학교는 왜 나오나몰라ᆢ


"야! 너야말로 1교시부터 처 자면서 학교는 왜 온 거냐?"


"몰라서 묻냐? 졸업장은 받아야 할거 아냐! 모의고사날 이야말로 아주 자기 딱 좋지.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맨날 잔다고 뭐라 하는데 시험날은 뭐라 안 하잖아!"


하긴 그러네ᆢ 사실 강순진은 의무교육인 중학교만 졸업하려고 했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아프셔서 일을 못하시고,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다. 순진이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 고깃집에서 10시까지 알바를 한다. 주말에도 하루종일 일을 하는데 학교에서 안 피곤한 게 이상하지ᆢ순진이가 학교 안 간다고 하는데도 부모님이 떠밀어서 그냥 왔다갔다만 한다.


"야! 근데 그거 아냐? 나 말이지 꿈을 꿨는데 너 나왔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아차ᆢ 괜히 말했네.

개꿈일 뿐인데ᆢ뭐 좋은 꿈이라고ᆢ 쩝.


"뭐? 야 네가 나 엄청 좋아하나 보네ᆢ ㅎㅎᆢ이따가 꿈 얘기 해 줘!"


순진이는 아마 내 꿈얘기에 관심이 없을 거다. 걔는 꿈을 꿀 시간도 별로 없을 테니ᆢ 그리고 우리가 뭐 절친도 아니고ᆢ그렇게 말하고 걔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 반 급식 차례가 오기 전까지 뭘 해야 하나ᆢ 애들은 다 앞머리 헤어롤 말고 거울 보고 화장을 고치거나 남자 친구 만나러 갔다.


나는 그냥 멍을 마구 때리고 앉아 있었다.


꿈이었구나.

꿈이었어.


그래. 성적 때문에, 수학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거였어.

그게 모두 꿈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에서 내려온 신', 극의 결말에서 신적인 존재가 기계 장치를 이용해 무대 위로 내려와 복잡한 갈등을 갑작스럽게 해결함) 잖아.


그런데, 왜 내가 수학 때문에 그렇게 괴로와야 하지? 평생 내가 미적분을 얼마나 풀게 될까? 그게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오로지 좋은 대학,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렇게 내 젊은 날을 희생해야만 하는 거야?


썩을ᆢ 정말이지 정의롭지 않아. 학교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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