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다시 굴리기 시작한 정의
나는 최정의. 수학 6등급의 아주 평범한 문과반 고등학생이었다. 그날, 같은 반 친구 강순진이 나에게 미리 빼돌린 기말고사 수학 시험 문제를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애가 어떻게 해서 시험 문제를 입수하게 되었는지, 절친도 아닌 나에게 왜 그런 엄청난 시혜(?)를 부여했는지 전혀 모른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은, 내가 결국 수학 1등급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고, 지필고사에서 100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0퍼센트의 수행 비율 때문에 3등급을 받았으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선생님들과 친구들 등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몸소 체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다.
정확히 일주일 후, 학교가 방학을 했고, 나는 겨울방학을 위한 원터스쿨에 등록을 해서 며칠 다니다가, 서대문 형무소 독방 안의 화장실만도 못한 크기의 학원 자습실 형태에 질려(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구조다) 결국 그만두고 집과 근처 다른 학원을 왕복하는 인생 최고의 재미없는 방학을 보내다, 드디어 고3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난번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즉 모의고사(라고 하면 될걸 쓸데없이 이름만 길게 쓴다. 학력평가를 해서 어쩌겠다고ᆢ걍 수능 연습 시키는 거면서ᆢ)를 봤다.
아아. 2교시 수학. 첫 페이지부터 어떤 문제도 전혀 풀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찍고 잤다. 국어는 우리반에서 제일 잘 하는 내가, 수학은 결국ᆢ
어쩌지. 샘들이 실망할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시 쳇바퀴처럼 도는 인생. 수포자의 삶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니네가 교육제도 이따위로 만든 거잖아.
사회에 나가서, 미적 확통 기하 대수, 얼마나 필요한데? 쓰기나 한대?유료 AI 하나 쓰면 1초면 답 나올 걸.
왜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
대체 내 이름처럼 정의로운 학교, 정의로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