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엇이 정의인가
순진이에게.
비가 촐촐 내리고 있어.
그리고 나는 이렇게, 내 일생일대의 비밀을 말하려고 해.
강순진, 너는 혹시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현신이었을까?
나는 어쨌든 수학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그게 네가 놓은 덫이었다고 해도. 내가 한 잘못은 변하지 않아.
그래서 난,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해.
이대로 살다가는, 마음속이 곪아 썩어버릴 것 같거든.
너도, 네가 어떻게 해서 그 시험문제를 가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나를 왜, 부정한 방법으로 도와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네 양심대로 행동하길 바라.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할 거야.
너도 너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길 바라.
'정의'가.
이렇게 나는, 순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러자, 믿을 수 없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내일, 학교에 가서, 이미 6개월이나 지나버린 작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시험 문제를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고, 강순진이 나에게 수학 시험 문제를 주었고, 내가 그걸 미리 풀어서, 지필고사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처벌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긴 인생에서, 이 잠깐의 불의로 얻는 이익 때문에 나머지 칠십, 팔십 년을 숨 죽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내가 입시제도나 교육제도를 탓하기 전에,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정의로왔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네 살 때부터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정의야, 세상 사람들과 하늘과 땅과 새들과 벌레들과 화분의 꽃들과 나무들과 심지어 죽은 영혼들과 신들 모두를 속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 양심만은. 속일 수 없단다."
부모님 모두 많이 실망하시겠지.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신의 입을 빌려 말한 것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