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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작가초아 Mar 27. 2024

초등학교 2학년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작고 귀엽고 티 없이 순수한 아이들?

#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


 2007년 3월 2일. 드디어 개학날이다.

초 중 고등학교 12년, 대학교 4년, 합이 16년을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고 보니 정선 시골 마을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교대 시절 간혹 어떤 교수님은 우리가 머지않아 교직에 나갈 '예비 선생님'이니 "OO 선생님"이라고 출석을 부르기도 하였고, 교생 실습 때 짧은 기간이나마 아이들에게 그렇게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매일 9시부터 5시까지, 정년 퇴임을 한다는 전제 하에 근 40년간 아이들도 학부모님도 심지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동료 교사도 나를 선생님이라 부를 것이다.


  계급 사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군대는 병사만 해도 이등병 - 일등병 - 상등병 - 병장, 부사관에서 장성급 장교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다 외우기도 버거울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 회사나 기업은 신입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경력에 따라 그에 걸맞은 직함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헌데 교직은 독특하게도 이제 막 신규 발령을 받은 신임사원 격 '초임 교사'도, 기업의 부장급이나 군대의 장성급 장교와 맞먹는 '30년 차 배테랑 교사'도 다 같은 '선생님'이라 칭한다. 고작 '스물넷'이었던 내게 붙여진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마치 처음부터 아이들을 '선생님답게' 잘 다뤄야 할 것만 같았고, 생전 처음 맡은 업무도 뭐든지 척척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부담감으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 이곳은 '학교'인가 '대기업'인가


  나는 2학년 담임을 맡았다. 

교사는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비껴나갔다. 학교에는 담임 업무 외에도 수 십, 아니 족히 백 가지가 넘는 '업무'라는 것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업무분장표를 쳐다보고 있자니, 6 학급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학교에 무슨 업무가 이리도 많은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담임 업무와 함께 과학총괄, 영재교육, 학부모회, 방과 후 특기적성 등 공통분모라고는 찾기 어려워 보이는 각양각색의 7가지 업무가 주어졌다. 작은 학교는 하나하나가 부장 급 업무라는 사실을 신규 교사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나마 지금은 교사 업무 경감을 위해 교무행정사가 있긴 하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체감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 현재 재직 중인 학교의 업무분장표 >

  관사의 문을 열었을 때 받았던 충격으로 한쪽 머리를 딱따구리가 두드리는 것 같았던 편두통 녀석이 2차로 내 머리를 쪼아댔다.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 말이 문득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까지 이런 업무는 없었다. 이곳은 학교인가, 대기업인가.

# 스물넷 청춘의 아름다운 출근길


  업무는 잠시 접어두고, 일단 오늘은 개학날이니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학교 정문 에 자리하고 있는 관사는 학교 건물에서 무려 10m나 떨어져 있다. 관사가 '학교 건물 안 교실 옆'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아 본다. 나는 보폭이 편이라 대략 열다섯에서 스무 걸음만 걸으면 학교에 도착했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관사 문을 열고 나와 학교 건물에 들어서는 시간은 넉넉잡아 20초면 충분했다. 서울에서는 '지옥철' 또는 꽉 막힌 도로 위 '병목현상'으로 1~2시간 출근길을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한창 꾸미기에 열정이 가득할 스물넷 청춘이었지만 출근길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구지나 화려한 구두에 멋들어진 가방을 들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화려한 구두도 멋들어진 가방도 보는 사람 없이 금세 신발장으로, 교실 캐비닛으로 쓸쓸히 자취를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아예 실내화를 신고 출퇴근하는 거 아니냐고 다른 선생님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그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그래도 운동장에서는 반드시 '실외화'를 신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 '선생님'이니까.)


# 작고 귀엽고 티 없이 순수한 아이들?!


    서울 아이들은 영악하다지만, 여긴 강원도 심지어 정선 산골 마을이 아니던가.


  '이제 갓 1학년을 졸업하고 올라온 작고 귀엽고 티 없이 순수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나의 예상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여니 28명의 적지 않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저마다 바삐 놀고 있다. 언뜻 보니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아직까지는' 귀여워 보였다. 일단 자리에 앉혀야 한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강하게 얘기하면 자칫 무섭게 느낄 같아 평소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들아~ 자리에 앉자~"


"......"


'어라? 내 목소리를 못 들었나?'


내 성량은 기본적으로 결코 작지 않다. 지금껏 어디 가서 목소리 작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 목소리가 안 들렸을 리가 없는데...'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다시 한번 목청을 가다듬고 배에 살짝 힘을 주고 한 층 더 큰 목소리로


"얘들아~ 시간 다 됐으니 자리에 앉아~"


  그제야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 앉는데 그 속도는 내 예상보다 매우 더뎠다. 이 속도라면 모두 자리에 앉히기까지 10분이 걸릴지 20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인내심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교탁을 손바닥으로 탁탁탁! 세 번 두드리고는 마치 빨간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훈련생들 군기를 잡는 교관처럼 급기야 우렁차고 힘 있는 목소리로


"얘들아! 자리에 앉아!"


  교대 음악교육과에서 연습한 복식호흡은 예상보다 빨리 실전에 투입되었다. 내 목소리에 흠칫 놀란 듯한 아이들이 주섬주섬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렇게 스물여덟 명을 겨우 자리에 앉혔다.


'아니, 그냥 자리에 다 앉히는 게 이렇게 진땀을 뺄 일인가?'


  혼자 생각하는데 유독 한 남학생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 아이는 '앉아있다'는 표현보다는 '누워있다'는 말이 더 적합해 보였다. 분명 의자에 앉긴 했으나 두 다리는 쭉 뻗은 채 엉덩이는 간신히 의자 끝에 걸터있어 금방이라도 의자 아래로 미끄러져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다. 나의 학창 시절을 더듬어 본다.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저렇게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는지. 아무리 재생을 해봐도 낯선 장면이다. 나는 즉시 '선생님 모드'로 변신하여


"거기 남학생, 의자에 바로 앉아야지."


  마음속으로는 화가 날똥말똥 했지만 최대한 감정을 내려놓고 상식적이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개학 첫날 아직 이름도 채 외우지 못해 거기 남학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그 2학년 아이로부터 이런 대답을 듣고야 말았다.

선생님, 앉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거 아녜요?

  그렇다.

나는 이 말을 듣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눈물을 머금고 공부와 사투를 벌였으며 교대 4년을 졸업하고 집에서 230km나 떨어진 머나먼 정선 산골짜기까지 유배되어 흡사 귀신의 집을 방불케 하는 관사에 초라한 짐을 풀었던 것이다!


이제 갓 1학년을 졸업한 '작고 귀엽고 티 없이 순수한 아이들'

마치 왕자님과 공주님이 첫눈에 반해 결혼식을 올리고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판타지' 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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