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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쉴 사이 없이 쏘아 올려지는 최루탄이 파란 하늘을 점점이 수놓더니 추락했다. 그것들은 곧장 너와 나에게 방점을 찍어대며 쏟아져 내렸다. 먼발치에서 보면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갑자기 달려들 때처럼 순간순간 두려웠을 것이다.
짙게 묻은 손때가 우스꽝스러운 낙서 한두 개에 가려진 방패. 엉거주춤 뙤약볕 아래 거뭇한 진압복. 그 짙은 진압복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들의 헬멧 사이로 잔뜩 겁먹은 눈동자 두 개가 "또르르 또르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렀다. 백골단은 물 빠진 청바지에 셔츠차림으로 언제든지 우리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럽게도 화려하게 채색이 된 헬멧을 쓰고서. 그들은 또 이제는 무슨 전설이라도 된 반인반신의 그 라이방을 훈장이라도 되는 양 쓰고서 의기양양해하기도 했는데, 눈은 왜 가렸을까.
심지에 불이 붙은 꽃병을 들고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교문 앞 그 길은 더욱 좁아졌다. 누군가 나서서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지만, 기억나지 않는 공허함만 남았다. 한쪽 보도블록을 이럴 때마다 깼더니 이젠 아예 아스콘으로 덮어버렸다. 거리의 반대쪽에서는 너와 나를 응원하는 시민들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양쪽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그 속에 너와 나의 부모님과 형제는 없었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걱정스러운 것은 매 한 가지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날 우리는 바람을 맞았던 것이지!"
텅 텅 텅.
최루탄 쏘아 올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파란 하늘에 쏘아 올려진 최루탄은 하얀 실오라기 같은 가스를 풀어내더니 내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모양이 너와 나를 닮았다는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 알았지만, 또다시 맴을 돌며 그까짓 손수건 한 장으로 가린 호흡을 방해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정신줄을 놓아야 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머릿속 그 어느 구석에까지라도 기어코 스며들어 "죽음이란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겁을 주고 있었다. 좁은 목구멍을 뜨겁게 채워 올라서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게 하고, 질질 침까지 흘리게 하고야 말았던 최루가스.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쳤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물러났던 그때 널 처음 봤었구나. 털썩 주저앉아 울고 있더니, 어느 순간엔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는 소리를 질렀고, 그러다가 곧 쓰러져 있던 너. 거뭇한 아스팔트 위에 뿌려진 붉은 피. 생명의 끈적한 흔적이 파란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유난스레 하얀 너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던 붉은 피. 점점 더 생기가 사라지던 네 얼굴. 그런 널 보고 어쩔 줄을 몰라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멍하니 서 있기만 했던 나. 바보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란 것이 들었던 것일까?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든 영상들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어쩌다가 세상이 이 지경까지 내몰리게 되었을까? 죽음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고 잔뜩 겁에 질려 엉거주춤하고 있던 나였다. 그리고, 그 짧은 억겁의 시간에서 나를 구제하기 위해 저만치에서 뒷걸음질 치던 누군가가 다가왔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업자. 119에 전화하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리만치 냉랭했던 선배였다. 그의 채근에 그제야 머릿속에서 겨우 기어 나와서는 너를 둘러업었다.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등이 따뜻해짐도 느꼈다. 곧 목언저리를 타고 너의 몸속을 일주하던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알아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오기라도 하는 듯 끈적거렸다. 내 무거운 발걸음을 붙잡기라도 할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