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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Dec 01. 2024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된다 1

프롤로그

오랫동안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메모장에 조금씩 써 내려갔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짤막한 소설로 써보려고 했는데, 한데 모아 놓으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길어질 듯합니다. 퇴고를 하고, 플롯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겠죠. 아직까지도 플롯이 온전하게 잘 짜이진 않은 듯해서, 그냥 정리하면서 써 내려갈 듯도 하고, 써 나가면서 플롯이 추가될 듯도 합니다.


확실히 쓰는 재미는 있겠는데, 어쩌면 읽는 재미는 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는 글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고 그의 시에서 유하감독이 말했던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압구정동 그 높고 낮은 빌딩들 중 유별스럽지 않은 볼품없는 빌딩 하나가 지사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선택지가 많았던 지훈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지 없이 첫 직장에 취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입사 직후부터 줄곧 지훈은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방황을 했다. 사실 방황이라고 해봤자 짧은 점심시간에 로데오거리를 여유롭게 거니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이따금씩은 그의 동기생들이 짧은 그만의 여유를 방해하기도 했다.


노란 은행잎을 사그락사그락 밟는 소리가 좋았다. 바람에 날려 군데군데 노란 잎무덤을 만든 은행잎 무더기는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지훈의 발의 움직임에 따라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달랐다. 달라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에그머핀을 씹거나 맥모닝세트를 들고 가로수길을 더듬는 것이 유일하게 자신에게 주는 자유였고 호사였다.


수연을 처음 본 날도 그랬다. 길가에 떨어져 누운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가 싶더니 지붕이 열린 파란 오픈스포츠카가 지훈이 앉아있던 낡은 나무벤치를 지나쳐 갔다. 막 미지근하게 식은 에그머핀 한 입을 습관처럼 베어 물던 지훈의 눈길이 바람결 따라 옮겨가다 무심코 그녀의 눈을 맞췄다. 긴 생머리에 볼터치만 겨우 한 듯했던 옅은 화장기, 짙은 쌍꺼풀의 커다랗고 맑은 눈이 무심한 듯 자신을 응시했는데, 처음 본 듯했던 그녀가 웬일인지 낯설지 않은 지훈이었다.


"누구지? 어디서 봤을까?"

얼떨결에 맞춘 짧은 눈 맞춤이었지만, 지훈에게 수연의 첫인상은 금방 지나쳐가진 않았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서둘러 결혼을 하기 위해서 지금의 회사에 취업을 했다. 누구나 입사를 원하는 회사였으나, 자신의 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였다. 그런 지훈은 지난 몇 개월동안 일주일에 두세 차례 맞선을 봤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거나 자신을 온전히 던질 수 있는 여인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은 사람이 만드는 억지인연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대개의 만남이 짧은 만남으로 서로 연락도 없이 흐지부지 끝났다. 열정적이진 않았어도 심드렁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이제 서둘러 결혼을 해야만 할 이유가 없어진 지훈은 점심시간이면 여전히 이렇게 벤치에 앉아 곧 가을 속으로 사라져 갈 노란 가로수길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수연을 마주친 오늘 지훈의 가슴속엔 알 수 없는 묘한 감흥이 바람 따라 날리는 은행잎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훈의 점심시간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지훈은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 동기생들이 그를 수배하기 전에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곧장 길을 건너서 한 블록 떨어진 맥도널드로 향했다. 압구정동 지점에서 지훈을 모르는 점원은 이제 없다. 갑갑해 보이는 정장 차림에 특유의 밝은 미소가 요 며칠 더욱 즐거워 보이는 이유는 몰랐지만. 에그머핀과 맥모닝세트가 든 종이봉투를 챙겨 들었다. 노란 은행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가로수 길을 따라 바삐 어제 앉았던 그 벤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누군가 앉았다.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파란 스포츠카 한 대가 곱게 세워져 있었다.


그래, 수연이었다.

수연도 그날 스쳐가며 보았던 지훈의 첫인상이 그냥 그렇게 지나쳐가지는 않았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눈동자가 맑고 깊은 잘 생긴 남자와의 눈 맞춤이었다. 그런 남자가 늦가을의 공원벤치에 홀로 앉아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있던 모습이 수연의 눈에는 왠지 짠해 보이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어났다.

얼마 만에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호기심이었는지 수연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낯선 감정이 왜 남자에게서 느껴지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수연은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충실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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