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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본부 앞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119구급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서는 사람들 특유의 웅성거림이 함께였다. 그들 중에는 누군가 머리를 많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학생회 임원들도 있었는데, 아무도 선뜻 다가오진 않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밉살스러워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도망치듯 끌려오듯 그렇게 너를 둘러업고 올라왔다. 끈적하게 흘러내린 땀방울과 피가 역하고 맵싹한 최루가스와 섞여 몸을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짐을 알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는 구급대원의 응급처치 후에도 정신을 잃은 채로 구급차에 실려 곧 병원으로 떠났다. 내게 남겨진 것은 너의 짙은 흔적뿐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사라졌다.
만남
지훈은 머릿속에서 벌써 오래전에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린 그날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이렇게 홀로 있을 때면 드물긴 해도 이따금씩은 꼭 그를 괴롭히곤 했던 그날의 기억이다. 그랬던 그의 기억이 어찌 된 일인지 수연을 처음 마주친 그날 이후로 머릿속에서 맴도는 일이 잦아졌다. 오래전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억 스스로가 과장을 하고 그것을 다시 머릿속에 저장한다. 어느 날 끄집어내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훈의 기억은 온전한 것일까. 그것과는 상관없이 지훈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연은 전날 지훈과의 첫 만남이 몹시 유쾌했다. 마치 그녀를 만날 것을 약속이라도 하고 나온 듯이 주저 없이 다가왔던 지훈이었다.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린 것은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몇 차례 지나치며 보았던 지훈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인스턴트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듯했다. 점심을 먹은 후엔 한참이나 그 맑고 깊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멍하니 초점을 버린 눈을 하고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다가 줍기도 했는데, 그런 행동들이 더욱 궁금증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서 나와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지훈이 항상 앉아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간간이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은행나무잎을 주워서는 멍하니 눈의 초점을 버리는 바로 그 벤치였다. 수연은 지훈을 기다리는 동안에 지훈의 행동을 흉내 내어 보았으나 별 감흥이 없었다.
지훈은 역시나 여느 날처럼 점심거리가 든 맥도널드 종이봉투를 들고서 수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오고 있었다. 다시 보면 지훈이 항상 앉았던 그 벤치로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여느 날과 달리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었다. 수연은 지훈의 웃는 얼굴은 커녕 그토록 밝아 보이는 표정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지훈의 얼굴에 가득한 따뜻한 미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채지훈입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좋군요, 반갑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수연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인사를 건넨 지훈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유수연이에요. 근데 우리 만난 적이 있던가요?" 수연이 얼떨결에 되물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