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짐승

by 몽유

지난밤, 포슬포슬 성긴 눈이 내리던

나의 작은 풍경에는 어디서 홀연히 나타난

짐승 하나 들어 정적은 깨지고

고집스러운 미련만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본래 그 짐승은

누군가의 눈에도 쉽사리 띄지 않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그저 그런 하찮은 것이었다

누구나의 눈길 한 번 끌지 못했고

누구 하나의 관심을 받은 때가 없다


어느 날 누군가 던진 거짓된 몸짓 하나

작은 파장이 끝끝내 누구인들 흔들어대더니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을 깨웠다


감히 허락되지 않는 거친 호흡으로 깨어나

무질서한 발길질로 어지러이 지치던 놈은

메스꺼운 오물만 흔적처럼 뿌려대고는

다시 누구나의 모습으로 감추고 있다

오늘처럼 볕 좋은 날에는 어디에선가

거짓된 눈웃음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곧 천지에 파란 풀잎 울긋불긋 가득할 것을

짐승이 거칠게 짓이겨 놓은 나의 작은 풍경엔

바람살에도 흔들리지 않는 키 낮은 풀잎들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그 모양이 짠하다


또다시 보슬보슬 눈 내리는

하얗게 눈 쌓이는 풍경 속에 서서

이젠 속지 않을 것이야 하면서도 못내 속이면

또 속고야 마는 나의 이 미련스러운 고집이 짠하다

keyword
이전 26화벌써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