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은 천천히 밀려나고
한 손에 움켜쥔 아침이
손가락 마디마다 매달려 떨어진다
빛은 무력하게 스러지고
숨 고인 공기가 눈가에 맺힌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어둠에서만 눈에 드는 것들이 있다
일찍 찾아오는 아침
창문 너머 어둠속 골목
발자국 없이 쌓인 먼지
깨어 있던 그림자의 기척
아침은 늘 낯설다
가난이 넉넉하던 시절에도 웃었지만
이젠 가난하지 않은데도 웃지 않는다
인적 드문 길 위에 묵묵한 기다림만 서 있다
누구에게나 쉽게 오는 계절은 없다
빛이 들면, 나는 다시 어두운 거리로 나선다
쉬이 머무르지 않는 계절
어깨 위에 남은 하루의 무게
어둠 속에서는 기다림이 자란다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잎 하나
바람에도 흔들리고
무거운 시간에 흔들리며
마른 숨결처럼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