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루를 타고 내리다
처마 끝자락에 걸린 너의 기억이
흔들리다가 투두둑 흔들리다가 투두둑
위태로운 추락이 만드는 연이은 파장
짙은 황톳빛 동심원이 맴을 돈다
하나 둘 셋 넷... 불가분의 나열
서로의 기억 속을 더듬던 너와 난
이따금씩은 눈을 맞대었고
그때마다 눈가에 어리던 수줍은 웃음
그런 널 보며 이쁘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곧 주체할 수 없는 약속이 되었지
파장을 일으키던 너의 짙은 눈동자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너는
해야 할 말을 집어삼키려는 듯
뚫어지게 나를 보았고
또 무심하게 눈길을 돌렸지
그리고 또 살며시 입가에 그렸던 수줍음
그날처럼 비는
그칠 기미 없이 용마루를 타고 내리고
처마 끝자락엔 잡상처럼 너의 기억이 걸렸는데
난 여전히 그날의 네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