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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Sep 16. 2024

14. 개 이야기

개에게는 나름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그저 멍멍, 컹컹, 낑낑 몇 개의 의성어로 그 말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멍멍에도 높낮이가 있고 크고 작음이 있으며 반가움, 경계, 분노, 억울함 등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실어 짖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언어학자인 개가  있다면 아마 수 백개의 다른 의미를 담은 멍멍의 기표들을 표기해 낼 것이다. 이에 비해 인간의 언어는 그 단어 수가 엄청나다. 한글이 50여만 개, 영어가 70만 개에 달한다. 그런데 이렇듯 풍부한 어휘와 정교한 문법을 가진 인간의 언어가 알아듣기 힘든 멍멍 개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어 개의 통역이 필요한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러한 상황이다.


피교수는 나교수에게 소환을 당해 처장실에 와있다. 앞에서는 흥분한 나교수가 한 손으로는 배꼽을 득득 긁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공중을 휘저으며 한 시간째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중이다. 피교수는 문득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나교수가 실존적인 고독감 때문에 울부짖으며 철창을 사이에 둔 자신과 소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동물원을 통째로 차지하려는 욕심쟁이 개였고 자신은 바로 옆 우리에 갇힌 토끼 같았다. 그에게는 철창이 먹잇감을 가로막는 방해물이겠지만 피교수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방어벽이었다. 그가 끝도 없이 짖어 대며 먹을 것을 요구한다면 그 희곡의 주인공처럼 쥐약을 바른 햄버거 패티를 던져주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나교수는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아 그게… 심각하네요.”


“내 말이! 잡숴줍쇼 하고 목을 내미는데 내가 어떻게 했겠어?”


“… 덥석 물었겠죠?”


“맞아. 하하하! 그래서 짤랐어.”


“네? 누구를요?”


“누구긴? 그 멍청한 학생처장을 일빠로 날렸고, 다음은 너네 과 학과장이야.”


“네? 왜요?”


그는 갑자기 덮칠 듯 다가와 피교수의 어깨를 덥석 잡고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긴? 우리 후배 내가 키워준댔잖아. 축하해 피천일 학과장!”


“네?”


“좋지?”


“제가 좋아해야 할 일입니까?”


“어허 사람 참. 이럴 땐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는 거야!”


그는 먹잇감이 고분고분하지 않자 밥맛이 떨어졌는지 피교수의 어깨를 놓고 다시 으르렁댔다.


“내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고. 진작에 애들 단속 잘하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이 꽉 막힌 인간이 말을 들어먹어야지! 그런 무책임한 사람은 백양대 교수 자격 없어!”


“학계에서 존경받는 학자이십니다만...”


“학자는 네미. 여기 학자 아닌 사람이 어딨어? 아무튼 얘기 다 끝났어. 본인도 책임 지고 물러나기로 했고.”


“무슨 책임 말씀이십니까…?”


“대자보 말야! 확실한 제보가 들어왔어. 대자보 쓰고 삐라 뿌린 놈들이 영문과 학생회 내에 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말야, 얼굴 없는 성자들인지 지랄인지 그 이름이 뭔가 영문학 꼬랑내가 나지 않아? 뭐 소설 나부랭이 그런데 나오는 이름이지 그치?”


피교수는 ‘꼬랑내’라는 말에 욱해서 쥐약이 든 패티를 당장 그 입에 물리고 싶었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빈 손을 그 아가리에 넣는 것은 위험했다. 그래도 그는 뭐라도 찔러 넣고 싶었다.


“소설은 제 전공이 아니니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특정 냄새의 도움은 필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만?”


“오호… 이것 봐라. 긍정도 부정도 안 하고 내 말을 계속 질문으로 받네. 역시 피교수다워… 아무튼 말이야, 너네 학과장은 문제가 많았어. 자네 녹화 리스트 알지? 이게 대학별 학과별 할당량이 있어서 중앙으로 보고되는 거란 말씀이야. 근데 그 인간은 일 년 동안 그걸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어? 고름이 종양이 되고 종양이 암덩어리가 됐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영문과 문 닫을 거야? 백양대 폐교 당해?”


피교수는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치고 싶은데 입이 꽉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동성이의 억울한 죽음과 ‘제자들을 팔아넘긴 교수들’이라고 했던 대자보의 글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수치스럽게 돌아다녔다. 나교수는 그의 창백해진 표정을 보고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에이 뭘 그렇게 쫄고 그래. 우리 후배님은 잘할 거야. 뒤엔 내가 버티고 있잖아.”

피교수는 그제야 나두일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깨달았다. 이 방은 창살로 된 우리가 아니라 개미지옥이었다. 창살 따위와 같은 안전장치는 없었다. 이 방에 들어온 순간 피교수는 개미지옥에 빠져들었고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그는 개미귀신이 큰 턱을 쫙 벌리고 있는 있는 지옥의 중심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뿐이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피교수는 자제력을 잃었다.


“지금… 저 보고 학생들을 감시하란 말씀입니까?”


“감시라니, 그건 아니지.”


“그럼 그게 교육입니까?”


“교육은 무슨, 사냥이지. 그리고 우리 후배가 내 사냥개야. 하하하~”


피교수는 분노와 수치심에 부르르 몸을 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냥 좋아하면 혼자 하시죠. 전 사양합니다.”


입술을 깨물며 문으로 향할 때, 나지막하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그의 덜미를 잡았다.


“쯧 이 살인자 새끼가.”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피교수의 몸이 굳었다. 귀가 먹먹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타다 남은… 재가 되어 흩어질 것 같은… 그저 종이 인형 같은… 움푹 파인 눈…  앙상한 손가락…

나교수는 천천히 다가와 구석에 몰린 먹잇감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어이 후배. 난 너 같은 새끼를 잘 알지. 까보면 구더기가 한가득인 것들이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 깨끗한 척, 고상한 척. 찍 소리도 못하는 쥐새끼 같은 게 정신 승리는 또 아주 오져요. 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알아? 오 못 믿겠어? 나 너 좋아해. 너 학과장 된 거 있잖아? 총장은 반대하는 걸 내가 억지로 너 시키자고 한 거야. 왜 반대했을까? 널 짜르려고 했거든. 왜 짜르려고 했을까? 누군가 널 찔렀어. 살.인.자.피.교.수….”

찔렀어… 피… 페인트 나이프… 물감… 피… 흐르는 손…

“장발장처럼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둔 그 비밀을 과연 누가 알아내서 투서를 넣었을까? 궁금하지? 나도 궁금한 게 있네? 이 사실이 신문에 알려지면 학생들은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네 과거에 대해 알면 학생들은 널 존경할까? 교수님~ 하고 인사해 줄까?”


피교수는 간신히 입을 뗐다.


“닥쳐…”


 “허허. 싫은데? 그래서 내가 좀 알아봤지. 우리 후배님 살인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데.”

철컥… 금속성 소리… 잠긴 문…   
숨소리… 콧노래… 비… 흐느낌….

“아니야….”


“아 그래? 그럼 아무도 안 죽었나? 아니지 죽었잖아. 그것도 자기 집에서 참 입에 담기도 험악하네…. 나도 궁금한데 어떻게 죽은 거야? 네 알량한 양심을 좀 들여다보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자살한 거야, 당한 거야? 뭐가 맞는 거냐?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하지? 결과적으로 죽인 거 맞잖아, 네가!

내가… 나는… 그날… 생일 케이크… 비…

나교수는 피교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둘 사이의 거리는 십 센티도 되지 않았다. 거구인 그는 자신의 이마로 피교수의 이마를 툭툭 내리치며 속삭였다. 키 차이 때문에 그의 입은 피교수의 눈높이에 있었고 그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두툼한 입술은 외눈박이 괴물처럼 그를 삼킬 것만 같았다. 그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겨운 구취와 침방울이 피교수의 정신을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 벌어진 상처의 피처럼 뿜어 나오는 기억과 생각이 뒤엉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벌거벗겨진 것 같은 수치심의 충격을 그는 간신히 감당하고 있었다.  


“야 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알아? 너라는 새끼는 말야, 참 안전해. 그래 안전해. 왜 그 순한 개새끼 있잖아. 밥만 주면 꼬리 흔들어주는 똥개. 십몇 년 지켜본 내가 널 요약해 보자면 그거야. 참 안전한 똥개. 봐. 마빡이 이렇게 벌게졌는데도 꼬리 말고 이렇게 얌전히 죽여줍쇼 하고 있잖아. 그니까 네가 좀 딴생각하고 똑똑한 척 해도 난 다 봐준다 이기야. 야밤에 내 이름 들먹이고 당직 땡땡이치고 어디로 사라져도, 희한하게 그 사이에 지진 나고 대자보 붙어도 난 널 믿는다 이기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안 돼… 문을… 저 문을…

나교수는 ‘이렇게’를 반복하며 피교수의 이마를 점점 세게 들이받았다. 힘에 밀려 피교수는 뒤로 주저앉았다. 나두일은 피교수를 밟으려는 듯 콱 소리를 내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피식 웃으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등 뒤로 말을 던졌다.


“주인을 절대 안 무는 똥개. 그게 충견이지. 그러니까… 우리 후배님이 이제 학과장 완장 차고 물어 와. 대자보 붙인 그 빨갱이 놈들 모가지를 꽉 물어서 나한테 응?”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고 배꼽을 긁으며 쾌활하게 마무리를 했다.


“내가 총장한테 그랬어. 그딴 과거가 뭐가 중요하냐, 내 후배는 내가 보장하는 애국 교수다. 힘을 실어주고 일주일만 지켜보자. 결과가 나오면 내가 쭉 같이 갈 거고, 아니면 총장님 맘대로 처분해라. 아니지, 그땐 내가 목줄을 잡고 님산까지 끌고 갈 거다 하하. 그러니까 사냥터를 뛰놀 시간은 딱 일주일이야. 알았어?"


피교수는 온몸에 힘을 주고 간신히 일어선다.  나교수는 배꼽을 시원하게 긁으며 껄껄 웃기 시작했다.


“아까 광장에서 참 웃겼어 그치? 개가 개를 끌고 다니다니. 하하하.


피교수는 비틀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야 똥개. 어디 가? 대답 안 해?


등 뒤에서 덮쳐오는 개 짖는 소음을 뿌리치며  피교수는 손에 온 힘을 주어 문고리를 잡았다. 머릿속에서 자신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 제발! 문 열라니까!…”

그는 머릿속에 울려대는 절규에 현기증을 느꼈다. 숨이 턱 막혔다. 다급하게 문고리를 마구 흔들며 문에 온몸을 던졌다. 문은 맥없이 활짝 열려 쾅 소리와 함께 벽을 때렸다. 피교수는 복도에 나뒹굴었다. 뒤에서 나교수가 혀를 찬다.


"지랄한다. 당장 이리 안 튀어와? 이게 죽으려고..."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변을 다급하게 둘러봤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날, 그가 문을 부수고 들어간 그 방도 텅 비어 있었다…

뭉개진 케이크… 찢어진 캔버스… 바닥에 나뒹군 화구들…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새 구두…. 베란다...
그리고…
빗소리….

그날 그 방안에 남겨진 처연한 물건들처럼, 텅 빈 공간에 던져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갈 곳을 잃은 그의 다리는 어두운 물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구두 소리. 나교수의 짖어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때, 품 속에 넣어둔 머플러가 스르르 밑으로 떨어져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며 달아난다. 머플러 끝이 들리며 누군가의 손짓처럼 그를 부른다. 피교수는 자신의 어깨를 덮치는 우악스러운 손을 뿌리치고 머플러를 쫓아 긴 복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멀리서 동동이의 멍멍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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